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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Jun 07. 2023

[병원인턴]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와 보호자

치료가 필요한건 알지만, 치료를 거부하겠습니다

오늘 응급실에 왔던 환자분들 중 2명의 이야기이다.

70대 남환 며칠 전부터 시작된 호흡곤란과 전신 위약을 주소(주로 호소하는 증상)로 본원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가슴 통증은 없었고 왼쪽 옆구리의 불편감을 호소하였으며 평소 당뇨를 앓고 있었다.

환자분은 증상이 어찌나 심하셨던지, 진료실에 스스로 걸어들어오지도 못하시고 119 베드에 누워 구급 대원들과 수심 깊은 얼굴을 한 보호자와 함께 진료실 밖에서 진료를 보았다.


출처 : Dailymedi

종종 사람들은 노인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는 경우,  '원래 나이가 들면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게 이상한 거다'라며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이런 생각은 젊은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노인분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나이가 들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며 통증을 인생의 동반자 삼아,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드시거나 파스를 사 붙이시곤 하니까 말이다.

물론 전혀 틀린말은 아니다. 세상에 '나'라는 생명이 존재하는 순간 동시에 갖게 되는 수많은 장기와 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착실하게 세월을 스스로에게 새긴다.

같은 시간을 함께함에도 중요한 사건들을 제외하고는 지난 세월의 대부분 잊는, 나쁜 남자 같은 머리와는 반대로 함께한 하루하루를 모두 기억해 주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뼈와 장기는 어찌 보면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 쓴 연장에 녹이 슬듯이 연골도 오래 쓰면 닳기 마련이고 심장도, 폐도, 위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름철 한껏 푸르름을 뽐내던 나뭇잎들이 늦가을 바삭하게 말라가는 낙엽이 되어가는 것처럼 기능이 저하되어간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노인분들은 소화가 조금 안되고, 뼈마디가 조금 쑤시는 것으로는 아프다고 말씀조차 안 하시는 것들을 많이 보아왔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시니까

그래서 나는 노인분들이 어느 날 몸이 아프다고 말씀하시면, 나 같은 젊은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심하게 아픈 것이라고, 그래서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출처 : 청년의사

119를 타고 오신 환자분께는 흉부 X-ray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고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처치를 하기로 했다.

그 뒤로 진료실(트리아지)에 앉아 쏟아지는 환자들을 분류하고, 응급실 병동에 있는 환자들에게 각종 술기들을 하며 뛰어다니느라 그 환자에 대해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은 채 일을 해나가고 있을 무렵 옆에 계신 교수님께서 아까 환자분의 X-ray라며 사진을 하나 보여주셨다.

원래 같으면 새까맣게 보여야 할 왼쪽 폐가 새하얗게 보이고, 뾰족해야 할 폐의 끝부분이 뭉툭하게 보이고 있었다.

왼쪽 흉강에 가득 찬 흉수

사진 소견만으로도 숨쉬기가 얼마나 힘들 셨을지 짐작이 되는  X-ray를 본 뒤  환자분을 호흡기 내과에 연결하였고 담당 선생님께서 내려오셔서 환자분에게 현 상태와 당장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설명을 해주셨다.

사진을 본 뒤 30분 정도 흘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실 병동에서 콜이 들어왔다.

'OOO 님 DAMA 동의서 받아주세요'


출처 : Medical reference

DAMA, 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의학적 충고에 반한 퇴원

의사가 현재 상태와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였으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받게 되는 동의서이다.

이 상황에서 치료를 거부한다고?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분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동의서를 받기 전 환자분에게 여쭈어보았다.

'환자분 많이 힘드셔서 119를 타고 응급실까지 오셨고, 또 치료받으시면 증상 많이 나아지실 텐데 왜 퇴원을 하려고 하세요? '

이어서 들려온 환자분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대로 동의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되면 돈이 많이 들 텐데 병원비를 낼 돈이 없습니다. 또 어찌저찌 치료를 받더라도 나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해야 되는데 돈도 없고, 부탁할 자식들도 없습니다. '

119에 실려 올 정도로 힘들었던 호흡곤란보다, 앞으로 내야 할 병원비가 환자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가 이렇게 발달한 나라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문턱이 이렇게 낮은 나라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너무나 보편화된 병원 진료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구멍이 뚫린지 오래된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돈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그래도 병원에 오셨지만, 돈 때문에 병원 자체를 가지 않는 환자분들이 수도 없이 많을지도 모른다.

학생 시절 몽골로 의료봉사를 하며 우리나라는 의료 서비스가 잘 되어있으니, 인프라가 열악한 해외로 봉사활동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등잔 밑이 어두운 줄 모른채 한 생각이었다.

현재 있는 의료시스템을 잘 갈고닦으며 보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환자분들을 돌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지 않을까


출처 : 전자뉴스

최근 성황리에 마무리된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보며 뇌리에 깊이 박혔던 장면이 있다.

10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소화가 안되고 기력이 없어 병원에 내원했다.

노인분들, 심지어 100세가 넘으신 환자분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동료 의사들과는 다르게 차정숙은 CT 촬영을 지시했고, 결국 응급 수술이 필요한 대동맥 박리임을 진단해냈다.

동료 의사들, 심지어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 자신도 차정숙 덕분에 환자가 위급해질 뻔한 상황을 빨리 발견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당연히 환자와 가족들에게 같은 반응을 기대했다.

허나 환자의 가족들은 곧 돌아가실 텐데 왜 CT까지 찍어서 일을 크게 키우냐, 장례식장까지 다 예약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차정숙에게 화를 내었다.

심지어 100세가 넘은 환자 본인은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돌아가시지 못한 것을 원통해하며 오래 사는 것이 형벌이라고 하였다.



기저질환이 많은 90대 남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가슴 통증이 악화되어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현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교수님은 CT 촬영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검사를 강력히 권하였지만, 보호자는 끝끝내 간단한 피검사 이외의 모든 검사들을 거부했다.

의료진으로서, 또 제3자로서 그 보호자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거부하는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으셨으니 정확한 연유를 알 방법도 없다.

그저 보호자분에게 말 못 할 개인적인 상황이 있겠거니 하고 어림짐작을 할 뿐

반복된 이런 상황에 보호자와 환자 모두가 지쳤을 수도 있고, 환자가 평소에 보호자에게 검사를 거부해달라며 부탁을 했을 수 가능성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의사의 존재 이유이고 사명이지만 그 행동이 무조건적인 선행이 아닐 수도 있다고



선한 의도를 갖고 하는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오히려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상황은 상당히 많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하 이루어진 '최저임금 상승'은 수많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오히려 같은 국민인 고용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고용 위축을 불러왔다.

다주택자 규제와 전-월세 상한제 등의 임대차 보호법은 무주택자들과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시행되어 많은 국민들의 삶을 도와주는 동시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동안 모든 행동에는 양면적인 결과가 있을 수 있지만 '환자를 치료한다'라는 사실만큼은 순수한 선행인 줄 알았다.

허나 환자의 치료 역시 양면적인 결과를 자아내는 수많은 일중 하나였던것이다.



혹자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의사들의 행동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극소수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기억에 남는 것은 100개의 선플보다 1개의 악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결국은 답이 정해져있는 문제일 뿐이다.

100명중 1명, 아니 10명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지라도 의사는 최선의 진료와 치료를 설명해야하고 환자를 설득해야한다.

그저 나에게 필요한 건 이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많은 경험이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환자도 좋고 나도 좋은 행복한 세상이 될 줄만 알았건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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