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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Mar 28. 2023

[병원인턴] 임종 선언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학 호스피스

여느 때처럼 끊임없는 콜에 허덕이며 처방을 내고 있던 어느 당직 날

그동안 접점이 없었던 병동에서 콜이 하나 들어왔고, 오더를 읽어 내려가는 나의 눈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호스피스 병동입니다. 임종환자분이 계셔서 임종 선언 부탁드립니다'



'호스피스 (Hospice) 병동'이란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분들이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통증을 줄여주고 심리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특수병동이다.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분들이 본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간의 삶을 정리하며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병동의 목적이다.

'치료'의 개념이 '질병의 치료'에만 머물러있던 옛날과는 다르게,  '마음'의 치료, 더 나아가 '영혼'의 치료로 확장되어 가는 요즘, 호스피스의 중요성이 더더욱 커져가고 있다.



질병의 치료는 의사의 전문 영역이지만, 마음과 영혼의 치료는 의사만의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호스피스 병동에는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병원은 심리상담가분들뿐만 아니라,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계시고 호스피스 치료 가운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의학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들을 '종교'와 협업하여 상호보완하는 우리 병원의 시스템을 처음 접했을 때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치료의 개념이 확대되어 가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의대에서 또 병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던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마음의 문제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약물과 진심 어린 상담이면 다 될 것 같았다.

하나 죽음의 공포를, 결국 같은 사람인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게 어찌 보면 오만이지는 않을까 의사는 신이 아니며 죽음과 삶의 문제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입사 전 OT에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근무를 하며 임종 선언 요청이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해 드리라고

의사가 임종 선언을 하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야만 가족분들이 다음 절차로 진행하실 수 있다고

임종 선언이 늦어질수록 가족분들은 고인과 함께 병실에서 발이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올라갔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런 중요한 업무를 맡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내가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보았던 임종 선언은 경력이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들이 하셨는데, 일을 시작한 지 고작 2주밖에 안된 의사가 이런 업무를 맡아도 되는 건가?

하나 이 업무는 나에게 주어진 업무였고, 나는 이 업무를 잘 해결해야만 했다.



처음 해보는 업무이기에, 또 이렇게 중요한 업무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임종 선언을 하는 방법들을 찾아보고  전담 간호사 선생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임종 선언은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심전도에서 심장리듬이 없는 것을 확인한다.

그 후 동공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순서대로 확인한다.

그 후 가족분들에게 임종을 선언하고 환자분의 몸에 삽입되어 있던 여러 장치들을 제거한다.

일련의 과정들을 여러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병실로 들어가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나갔다.



무거웠다. 임종 선언을 하는 내 마음도,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그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도 너무나도 무거웠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유족의 슬픔

가족을 보내는 과정을 의사가 잘 이끌어주길 바라는 유족의 마음

이 모든 과정을 머리맡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환자분의 영혼 한 번에 물밀듯 밀려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어깨를 짓누르는듯했다.



임종 선언을 마치고 난 후, 환자분 몸에 연결되어 있던 라인을 제거하려 하는데, 불현듯 이전에 읽었던 연구결과가 떠올랐다.

사람의 감각 중 청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되기 때문에, 돌아가시더라도 얼마간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였다.

이 연구결과가 사실인지 알 방법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가족분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환자분이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들 한 마디씩을 부탁드렸다.

슬픔을 참아내며 떠나는 가족에게 마지막 한 마디씩을 건네는 가족분들을 보며, 의사라는 직업의 무거움을 절감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 마지막 순간을 의사가 어떻게 안내하느냐에 따라 가족분들이 이 순간을 후회와 함께 추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도 너무나 중요하다.

그 마무리에는 본인의 역할, 가족의 역할, 그리고 의사의 역할이 있다.

의사는 무거운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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