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학병원에는 인턴이 주 80시간, 필요에 따라서 최대 주 88시간 까지 근무하게 하는 규정이 있다.
또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하는 규정이 더해져, 우리 인턴들은 하루에 평균 14시간정도 근무하게 된다.
이런식으로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규정하는 규정을 일컬어 '전공의 특별법' 이라 부른다.
최근 뉴스를 보니 주 69시간 근무에 대한 논의로 사회가 떠들썩하던데..
세상의 모든것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주 69시간 근무라는 말을 듣고 '너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것이다.
반대로 인턴이 주 88시간을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때, 우리를 부러워하는 분들 또한 계신다.
바로 '전공의 특별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에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신 우리 선배님들
2월 말, 쌀쌀한 날씨에 패딩을 입고 병원에 들어갔다가 병원에 나와보니 반팔을 입을 날씨가 되었다는 흔히 들려오는 경험담 부터 100일당직, 48시간 연속근무 등등 지금의 사회분위기로는 결코 용납되지 못할만한 일들이 이전에는 비일비재 아니, 모든 병원에서 볼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혹독한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되신 많은 선생님들, 교수님들께서는 요즘 나같은 젊은 의사들을 보고 '이렇게 편하게 수련해서 어떻게 실력있는 의사가 되겠어?' 라며 혀를 차시지만..
인생은 역시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나는 지금의 수련과정도 결코 쉽지않다고 생각한다.
주 88시간의 근무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병원 일이라는 게 어디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칼같이 끝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오늘까지 처치해야 할 환자들이 있는데, 퇴근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 환자들을 내버려 둔 채 퇴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내가 마무리 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하도록 당직 근무를 서는 인턴들이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당직 근무자들에게 근무를 인계하면 된다'라고 하지만, 인턴의 고충을 한마음 한뜻으로 느끼고있는 같은끼리 그런 행동은 사람된 도리로써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결국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 88시간보다 더 일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으며, 병원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대부분 받아들인다.
나같은 MZ세대의 의사들을 많은 선배님들이 걱정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직생활보다는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고 공과사를 확실하게 분리하여 어떻게보면 이기적으로 비춰질수 있는 사람들을 한데모아 'MZ세대'라 부르고, 일정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경향을 가진것처럼 몰아가는 사회분위기의 탓이라 생각한다.
나이대가 아닌 그러한 성향으로 MZ세대를 규정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말할수 있다.
우리병원 인턴중에는 MZ세대가 단한명도 없다고 말이다.
병원마다 다를 수는 있겠으나 우리 병원을 기준으로, 당직 근무는 당일 정규근무를 하고 추가적으로 야간근무까지 하는 것이다.
즉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총 24시간을 근무하는 것을 당직근무라 부른다.
당직근무가 부담스러운것은 단순히 24시간을 근무하기때문은 아니다.
평상시에 밥잘먹고 잠잘잔 사람들이 어쩌다 하루정도 24시간 안잘수 있다.
살면서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거나, 게임을 하느라 밤을 안새본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러나 문제는 당직근무를 한 다음날이 오프가 아니라면 당직이 끝난 그 순간부터 다시 12시간을 근무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연속으로 36시간을 근무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점이 내가 병원생활하며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물론 아예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것은 아니고 자는시간을 모두 다합쳐서 3시간정도까지는 어떻게해서 잘수는 있다.
30분 잤다가 깨고, 또 잠깐 눈을 붙였다가 30분 자고 깨고의 반복이지만 말이다.
당직근무를 하고난 다음날, 정규근무를 할때는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처방창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서있을때는 벽에 머리를 기댄채 축 쳐지게된다.
앉을 자리가 보인다 싶으면 곧바로 앉아버리고, 혹여나 당직실에 갈 시간이 생겼다 싶으면 침대에 온몸을 던져 30분씩 꿀같은 기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스케줄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턴들이 골고루 소화하고 있다.
나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니고, 혹여나 내가 주저앉으면 내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야한다.
인턴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힘든 일정을 가진 전공의 선생님들까지 모두 해내시는데 나 혼자 끙끙 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욕구 중 수면욕이 가장 큰 나는 그저 어떻게든 버티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 인턴생활을 버텨나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으로 당직 근무도 꽤 괜찮은 날이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날이 있다.
보통 당직 난이도는 본인이 근무하고있는 과의 난이도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힘든과 당직일지라도 그 안에서 더 힘들고 덜 힘들고가 나뉜다.
쉬운과의 쉬운당직날이면 몇시간에 한번꼴로 콜이 올수도 있고, 힘든과의 힘든당직날이면 정규근무가 끝나고도 저녁을 먹을시간조차없이 밤 12시를 넘길수도 있다.
그날 당직 근무가 얼마나 힘들지는 그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그저 오늘밤 별일 없이 넘어갈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뿐이다.
18:00 정각이 되면 그 이후로 생기는 모든 일들은 당직 근무자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외과나 내과처럼 덩치가 큰 과는 해당과의 일만 도맡아하는 당직인턴이 따로 있지만 안과나 이비인후과, 성형외과처럼 비교적 덩치가 작은 과들은 여러과의 일을 한데묶어 '통합당직' 인턴에게 연락한다.
이번달 통합당직인턴은 바로 나였고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신경과, 일부 내과병동의 업무가 나에게로 향했다.
여러 병동에서 동시에 서로 각기다른 종류의 콜들은 3월 당직인턴의 정신을 흔들어놓기에 더할나위없이 충분했다.
선생님 OO 병동 OOO 환자 OO 처방해 주세요
OO 병동 OOO 술기 부탁드립니다
OOO 병동 OOO 동의서 받아주세요
이 병동에 쌓인 일들이 끝나면 다른 병동 일이 쌓여있고, 그 병동의 일을 끝내면 다른 병동의 일이 쌓여있는 무한 굴레가 끊임없이 굴러갔다.
무거운 바위를 영원히 반복해서 옮겨야 하는 시시포스가 느끼는 기분이 이랬을까?
인턴들의 전투화, 크록스
지난번 단번에 ABGA를 성공했던 것은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가뜩이나 깊은 혈관을 찌르는 이 아픈검사는 여러 번 시도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바늘을 푹 찔렀는데 피가 안맺혔을때, 다시 바늘을 살짝 뺐다가 방향을 돌려 찔렀을때마저 카테터의 끝에 새빨간 선혈이 맺히지 않을 때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 어... 왜 안나오지? '
흔들리는 동공으로 환자분의 얼굴을 흘깃 본다.
고통에 눈을 질끈 감고 빨리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환자분
이루 말할수 없는 죄송함이 겉잡을수없이 커졌고, 다시한번 모든 집중력을 환자의 맥박을 잡고 있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집중하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바늘을 찔러본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카테터 끝에 맺힌 새빨간 피를 보는 순간 마음의 부담이 단번에 내려가며 '피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 라고 기쁜 목소리로 외친다.
사실 두번을 찔러도 안나오는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럴때는 하는수 없다.
'환자분 좀더 능숙한 선생님 모셔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고 난뒤 재빨리 인턴 단톡방에 ABGA 도움을 요청한다.
한번 안나오는 ABGA는 끝까지 안나온다는 '인턴 제 1법칙'에 따라 안될때는 깔끔하게 포기할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실패했던 환자분은 다른 선생님들을 모셔오면 정말 신기할정도로 피가 단번에 나오곤 하는데 이럴때면 의사와 환자의 궁합이라도 있는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ABGA 사진 [출처 : 코메디닷컴] 전립선 비대증이 있는 환자분들의 폴리 카테터는 어찌나 안 들어가던지
폴리 카테터를 넣을 때는 카테터의 끝이 닿는 느낌이 간접적으로 내게 전해진다.
잘 들어가고 있구나, 앞에 단단한 곳에서 막혔구나
전립선 부근에서 카테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면,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답답한 느낌이 내 마음마저 답답하게 만든다.
카테터를 돌려도보고, 살짝 뒤로 당겼다가 다시 넣어도보는 등 내가 할수있는 온갖 방법들을 다 해본다.
그동안 배웠던 온갖 술기 지식들을 떠올리고, 영상을 다시 보고 오고, 환자공감 PPI를 쏟아내고..
나는 ABGA가 아닌 다른술기들은 스스로 최대한 해결해 보려고 하는 편이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어떻게해서든 스스로 해치울 수 있었다.
이렇게 수월하게 해결하지 못한 술기를 끝내면 당직실에 와서 곧장 관련 동영상을 보고 책을 찾아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공의 경험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지난 인생을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 더 잘할수 있을지 고민의 고민을 거치며 당직의 밤을 보낸다.
도뇨관 삽관 [출처 : 의과대학 이러닝 컨소시움]
그렇게 쏟아지는 콜을 털어내고 나면 시계는 어느덧 12시가 지나있다.
앞서 말한것처럼 정말 바쁜날에는 콜을 해결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일을 하게되는데, 그럴 때면 당장 눈앞의 일만 생각하느라 크게 배가 고픈지를 모른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일이 해결되어 여유로워지면 거짓말처럼 꼬르륵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본능에 이기지못해 어슬렁대며 먹을것을 찾기 시작한다.
병원 내 편의점은 12시까지 운영하는데, 배꼽시계가 한참이나 늦어버린날에는 할 수 없이 전공의 휴게실로 가서 컵라면과 수프로 한 끼를 해결한다.
어느 때는 컵 수프가 있고, 어느 때는 컵밥이 있고 메뉴는 갈 때마다 다양하다.
컵라면의 종류도 꽤 많기 때문에 마치 작은 편의점에 와있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오늘 저녁은 어떤 조합으로 먹어볼지 고민하는 것도 인턴생활속의 소소한 기쁨이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이렇게 라면을 먹을 때마저 처방을 내달라는 콜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간혹 바쁘지 않은 당직날에는, 인턴 동기들과 야식을 시켜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동기들과 같이 일한 지는 아직 1주일밖에 안되었는데도 벌써 전우애가 쌓이기 시작했다.
다른 병원보다 인턴수가 절반밖에 안되는 병원에서 근무하는건 양쪽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달고 달리기를 하는것같은 느낌이 든다.
' 다른병원 인턴들도 물론 힘들겠지만 우리만큼이나 힘들겠어? ' 이라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우리병원 인턴들은 6개월안에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가 될것이라 자신한다.
앞으로 남은 5개월 하고도 절반의 기간을 지금처럼만 서로 도와가며 잘 버텨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새벽 1시가 넘어가면 환자분들도 대부분 자는시간이라 잘 꽂혀있던 L-tube를 뺀다던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일이 없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술기를 요청하는 콜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단순한 처방 콜 이긴 하지만 간혹가다가 정말 부담스러운 업무가 주어질 때도 있다.
바로 '주치의 업무' 이다
해당과 당직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안계신 경우에는 해당과 인턴이나 통합당직이 간단한 처치를 하거나 교수님께 상황에 대해 노티를 드리는 일을 해야한다.
환자가 잠이 안온다거나, 열이 난다거나, 아프다거나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콜이 들어오면 정말 머리가 새하얘지고 가슴이 두근댄다.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인턴선배들이 내려준 지침서를 빛의속도로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웬만해서는 선배들이 내려준 상황 지침을 몇 번이고 살펴보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을때에는 선생님께 콜을 한다.
이미 병원을 떠나 앞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가엾은 3월달 인턴들에게 시간을 내어 조언을 해주시는 인턴 선배님들은 날개만 없지 천사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주치의 업무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 임과 동시에 비록 큰 상황은 아니더라도 이제 내가 어느 정도 임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의사의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약 2시가 넘어가면, 점차 콜이 잠잠해진다
바로 이때가 잠을 잘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이때를 놓친다는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 막차를 놓치는것보다 더 큰 손해일지도 모른다.
첫 시도는 큰 부담없이 30분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해 본다.
처음 30분 동안 콜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이번에는 과감하게 1시간 알람을 맞춰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1시간 동안 콜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없다. 애초에 그러길 바라는 게 욕심일 테지
1시간동안 쌓여있던 콜들을 눈꼽도 떼지못한채 당직실 모니터앞에 앉아 처리한다.
비몽사몽 처방을 내고나면 좀비처럼 다시 침대로 기어올라가 일시정지 해두었던 잠을 다시 청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콜이 없다고 해도 당직 때 마음편하게 잠을 잘수는 없다.
내가 일하는 곳은 대학병원이고, 대학병원에서는 24시간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든 상관없이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언제 울릴지 모르는 '코드블루' 방송
코드블루는 병원안에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방송에서 코드블루를 외치는 순간, 수술방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만사를 제쳐두고 방송에서 알려주는 위치로 다리가 빠져라 달려가야 한다.
심장이 정지하면, 온몸에 산소가 있는 피가 흐르지 못하고 전신, 특히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다.
일단 심장이 정지하면 뇌는 스스로가 비축하고 있는 에너지로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다 끌어서 생명을 유지할수 있는 시간은 최대 4분 이다.
그래서 심정지의 골든타임이 4분인 것이다. 심장이 멈춘 상태로 4분이 지나면 뇌 손상이 시작되고, 6분이 지나면 손상을 넘어서 뇌사상태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심정지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10분이 지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이 오게되고 그 이후로 심장이 다시 뛴다고 해도 심정지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인턴들은 가능한 한 빨리, 4분이 지나기전에 심폐소생술을 하기위해 병동이 몇층에 있든 상관없이 계단을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CPR자세 [출처 : 하이닥] 병실에 도착하면 보통은 그 환자가 있던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가슴압박을 하고,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인턴은 도착하자마자 가슴압박을 이어받고, 사타구니 쪽에 있는 Femoral artery에서 ABGA를 시행해 현재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다.
가슴압박을 할 때는 말 그대로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가슴압박의 깊이와 속도에 집중한다
5-6cm 깊이의 압박과, 분당 100-120회의 속도, 또 압박과 압박 사이에 가슴에 압력을 주면 안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너무 깊어도, 너무 얕아도,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가슴압박을 효율적으로 할수가 없다.
제대로 가슴압박을 하면 심장이 뛰는 것에 25%까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고품질의 가슴압박을 우리 의료진들은 늘 연습해야하고 언제든지 실시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입으로 숫자를 세는 동시에 제발.. 제발..이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루카스' 라는 가슴압박 기계가 올 때까지 가슴압박을 지속한다.
CPR을 하는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슴압박을 2분만 제대로 하면 온몸이 비오듯 땀에 젖는다.
사람이 지치기 시작하면 깊이와 속도처럼 CPR의 핵심들이 무너지고 이 핵심들이 무너지면 환자의 심장이 잘 못 뛰게 되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때문에 가슴압박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루카스를 사용하는것이다.
하지만 루카스가 사람이 직접 하는 CPR보다 결과와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연구가 있어서 인턴숫자가 많으면, 웬만하면 직접 CPR를 하곤 한다.
우리 인턴들이 가슴압박을 하는 동안 내과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심전도를 보고, Femoral artery에서 시행한 ABGA 결과를 보고 추가적으로 어떤 처치가 필요한지 실시간으로 오더를 내려주신다.
CPR을 하는 중간중간 Femoral artery(허벅다리에 있는 동맥)에서 ABGA(동맥혈 채혈)을 해서 환자의 전신상태를 파악하기도 하고, 자발순환이 돌아오지 않으면 에피네프린이나 아미오다론 같은 약물을 주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CPR을 하고 처치를 하며 규칙적으로 맥박을 확인해보고 ROSC(자발순환 회복)이 되었는지를 판단한다.
자발순환이 회복되면 심폐소생술을 중단하는데, 불행하게도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은 수십 분 안에, 짧으면 몇 분 안에 다시 심정지가 오기도 한다.
그렇게 또다시 코드블루가 울리면 우리 인턴들은 모든 일들을 멈추고 또다시 전속력으로 병원 계단을 뛰어가야 한다.
요즘 들어 그저 의대를 졸업했다고, 의사면허증이 있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지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비로소 의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학생 때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의사는 수도 없이 많은 경험이 쌓인 베테랑 의사였었고 현실의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배워야 하는, 첫 걸음마를 내디딘 새내기 의사였다.
지금의 모든 경험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의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