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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로 기다리는 엄마

갈등과 모순의 강을 건너기

by 리좀

“인간의 상호의존성이라는 ‘배태된 의존성’에 내재한 평등 개념은 우리가 온전히 기능함이란, 의존인과 의존노동자의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의존관계에 가담하는 우리의 필요와 능력이 전제되어야 함을 내포한다.” (Eva Feder Kittay의 『돌봄:사랑의 노동』 中에서)


어린 보석이를 두고 일터로 복귀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계약직 근로자였던 나는 사규에 엄연히 명기되어 있던 육아휴직기간 1년을 꽉 채워 썼다는 이유로 다음 해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계약직 직원으로서 그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던 시도에 대한 결과는 우세하게 예상했던 대로 ‘해고’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계약을 매년 갱신해 가며 만 5년 간 근무했는데, 회사에서는 재계약 불발 사유를 ‘개인 사정’이라고 명기하라고 지속적으로 권유했다. 부당한 처사에 끝까지 저항하느라 동료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몇 개월동안 보석이를 돌봐주시던 친정 부모님이 갑자기 연고지 하나 없는 지방으로 낙향하시는 바람에 18개월짜리 보석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보석이를 안고 집 근처 어린이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니던 날, 그날 구름 가득 낀 하늘과 서늘한 공기와 무거운 마음에 관한 기억이 나를 해고한 회사의 부당함보다 더욱 부당한 죄책감으로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어린이집 문을 일부러 활짝 열었던 것 같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리는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챙겨둔 어린이집 준비물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보석이를 둘러업고 집을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오지 않은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어 있던 보석이는 신기하게도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잠에서 깨서 저를 떼어 놓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엄마를 향해 현관문 앞에 매달렸다. 출근시간에 쫓겨 보석이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뒤돌아 섰던 날들의 수를 의식적으로 헤아리지 않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지나면 익숙해져서 엄마에게 손 흔들며 잘 갔다 오라고 인사하게 될 거라던 원장의 말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서도 모든 엄마가 친구들을 다 데려간 후에 가장 마지막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소한 체구로 또래보다 10cm 정도 작았던 보석이는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 한참 전부터 까치발로 창가에 매달려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매일같은 기다림 속에서 1초가 한 시간쯤 같았을까, 그리움보다 원망이 혹시 더 컸을까 같은 생각은 일부러 하지 않기로 했던 것 같다. 애써 가로막았던 생각과 마음 때문인지 그때의 기억은 다른 때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


내향적인 성격에다 체격까지 작았던 보석이가 생애 최초의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매일 펼쳐졌다. 집으로 돌아온 보석이는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정확히 한 시간 동안 이것저것 불평하면서 떼를 썼다. 평소 스스로 잘하던 일도 하나하나 다 엄마에게 시키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단체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퇴행이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했다. 그러나, 보석이의 떼쓰기가 정확히 한 시간이면 종료되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낮시간 중 12시간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하는 보석이에게 퇴근 후 천근만근 파김치가 된 몸과 마음의 티를 낼 수 없었다. 내지 않았다기보다 낼 수 없었다에 가까웠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더 취약한 사람은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보석이 쪽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더 강하게 머무는 특정 시절은 유달리 더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많았던 시절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생의 많은 시절들의 부상이 알려주는 것은 아직 어쩔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가 늘 외면하거나 무시해 오던 바로 그 사실일 것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더 잘했을 거 같지는 않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보석이가 느꼈을 엄마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달래 주려 최선을 다했다. 너무 곰삭은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내분비계의 이상증세를 보여 수 년후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기 전까지 진력을 다했다. 지금도 많은 엄마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진력을 다하고 있을 텐데 정작 아슬아슬한 봉합으로 버티는 그들의 상처를 터뜨리는 것은 전혀 다른 데 있다.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어린것을 떼 놓고 어떻게 집을 나설 수 있냐는, 독한 엄마라는 무심한 말 같은 데 있었다. 혹은 어떻게 몸이 다 상할 때까지 두 가지 일을 다 하냐는, 힘들면 일을 그만둬버리라는 영혼 없는 말 같은 데 있었다. 애써 지켜온, 애써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한편으로 그 안에서 쉽게 자라나는 죄책감 같은 것까지 감당하면서 어떻게 멀쩡하게 살 수 있냐고 오히려 묻고 싶은 그런 심정 같은 데 있었다.


가끔씩 보석이는 자기가 먼저 잡았으니 자기 장난감이라고 울며 잠꼬대를 하느라 새벽잠을 깨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또렷한 발음의 잠꼬대 내용 때문에 피곤한 몸을 하고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한 번은 갑작스러운 고열로 경기를 해서 보석이를 급하게 병원에 데려간다는 어린이집의 연락을 받고 급히 회사를 뛰쳐나오기도 했다. 허겁지겁 잡아 탄 택시 안에서 정신줄을 놓고 제발 빨리 가달라고 벌벌 떨며 말했던 그런 기억쯤은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몇 개 정도는 갖고 있을 터였다. 우여곡절은 있어도 큰 탈만큼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단순한 희망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더러 있다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의 장애물을 요행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도 지속되는 현실이다. 수많은 보석이와 보석이 엄마들이 건너가고 있는 현실의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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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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