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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됨 속에서 빛나는 희열

엄마라는 중력으로부터의 첫 도약기

by 리좀

“타인은 나를 넘어서 있는 존재로, 내가 속할 수 없는 외부에 있다. 사랑은 그 외부로 나를 내어주는 것, 그 외부를 품는 것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전체성과 무한』 중에서


산후관리사와 엄마가 각각 2주씩의 돌봄 수행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출산 후 한 달이면 혼자 아이를 온전히 맡아 키우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견해에 가깝다. 업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장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육아에 관해서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보석이는 아직 낮에도 많은 잠을 자는 시기였지만 잠든 동안 깨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젖병소독,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비롯해 육아 방법, 용품 등에 관한 정보도 수시로 찾아봐야 했다.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신생아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 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하느라 쪽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기묘한 일은 한밤 중에 한두 번씩 꼭 울리는 보석이의 우렁찬 수유알람소리가 나한테만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데시벨 속에서도 꿀잠을 자는 보석이 아빠의 수면이 연극이라고 깊게 확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생아는 태어난 후 일정 기간 동안 스스로 엄마와 분리된 객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생후 6개월에서 9개월 정도를 지나면서 분리불안으로 이 스멀스멀한 객체성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한다. ‘엄마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고?’라는 의문과 의심과 절망은 그 뒤 한동안 이어지다가 적응기, 분리기에 이르러 결국 현실자각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이 엄마의 일부고, 엄마가 자신의 일부라는 영원불멸의 느낌에서 강제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안정적인 애착관계로 분리불안을 극복하고 분리기를 잘 통과하면, ‘당신(엄마 혹은 아빠)이 항상 거기 있을 거라는 믿음’의 ‘대상항상성’이 형성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체적 성장과 함께 실로 엄청난 정신적 성장을 하는 것이다. 정작 신생아의 분리기에 오랫동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라는 것은 둘 이상이 상호작용을 하는 원리라 둘 중 하나가 성공적으로 분리되지 못한다면 나머지 하나도 제대로 분리될 수 없다. 실제로 아이가 성인이 훨씬 지난 후에도 정신적인 샴쌍둥이 같이 생활하는 부모자식 관계도 있다.


시력에 색감과 입체감, 거리감이 점차 생겨나면서 보석이는 하루 중 일정 시간 동안 공중에 매달린 모빌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바쁜 일정을 보냈다. 처음에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모빌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이후에는 팔다리와 심지어 머리까지 동원해 휘적휘적하며 모빌들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시간이 예상보다 길고 규칙적이어서 마치 운동시간을 정해놓고 스스로 그것을 지키려는 행동 같아 보였다. 누워서 하는 통합적 감각운동을 한 차례 마치고 나면,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할 영양 공급을 받고 이내 곯아떨어졌다. 누군가 가장 예쁜 아이의 모습은 잠자는 모습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매일 한 번씩은 꼭 보석이의 (예쁜) 잠자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짧은 시간이지만 미세하게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 생애 중에 가장 폭풍성장하는 시기여서 그렇겠지만 체중이나 신장 같은 외형뿐 아니라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며칠 전에 보았던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성장 과정 중에 계속해서 이미지가 변하는 것은 신생아의 얼굴에서 다 자란 후의 모습이 예측 불가능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백지 같은 벌거숭이로 태어난 아이의 얼굴에 다양한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 자신과 아이를 둘러싼 주변부 전체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보석이가 태어난 후 성인의 수면패턴에 적응하고, 언어적 의사표현을 시작하고, 어른의 밥을 먹기 전까지가 신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대부분 눈밑에 다크서클이 선연한, 삐쩍 말라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퀭한 형상 속에서도 표정만큼은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시기 이전과 이후에 찍은 어떤 사진 속에서도 그때만큼의 기쁜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생초보의 입장이라 행여 아이에게 실수라도 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24시간 강도 높은 돌봄 노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존재 자체의 힘 때문인 것 같다. 사진 속 내 얼굴 표정에는 새로운 존재와 그 존재의 성장에 대한 설렘이 빠짐없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얼굴을 주시하는 보석이의 한결같은 시선도 함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보석이가 항상 엄마를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카메라만 보기 바빴던 것이다. 보석이는 카메라 쪽을 향해 감출 줄 모르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보석이가 그 무렵 따뜻한 시선으로 엄마에게 건넨 말을 나는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폭풍 같은 아이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자신의 감각을 총 동원한 표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는 많은 것들을 늦지 않고 제 때에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고, 부족한 역량을 탓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진 속 보석이는 엄마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의 즐거운 표정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무엇이 항상 분주한 엄마를 그렇게 활짝 웃게 만드나요. 잘 모르겠지만 엄마를 웃게 만드는 사람이 나이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능한 오래, 오래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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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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