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을 Oct 10. 2023

진격의 민어

8월의 민어 해체쇼


민어 비늘의 다양한 용레. 갑옷, 모자, 부채, 비늘뻥튀기?


나 : 아빠~ 나 싫어하죠! 나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거잖아요. 아니 민어가 그렇게 커도 되는 거예요?

아빠 : 크하하하하. 크지야? 무겁고 좋더라. 잘 먹었냐?


엄마가 텃밭을 영업한다면 아빠는 목포의 바다를 영업한다. 엄마의 텃밭 상자가 일주일 단위로 움직인다면 아빠의 바다 상자는 시즌별로 움직인다. 바다의 트렌드를 읽는 사나이라고나 할까. 제철에 맞는 생선을 사기 위해 새벽 부둣가를 서성이시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수시로 상인과 어부들에게 말을 건다. 이때다 싶으면 배에서 바로 경매 받은 생선을 유통 마진이 붙기 전에 사서 얼음을 잔뜩 채워 자식들에게 보내신다.


8월엔 민어가 제철이란다. 결혼하고 아빠가 보내주시는 생선들 덕에 생선에도 제철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집나간 며느리도 들어오는 가을 전어쯤이야 모르지 않지만(컴백할 맛 아님. 며느리는 가던 길 가자) 가을의 삼치, 여름의 민어, 겨울의 조기 등등은 새로운 정보였다. <자산어보>에는 “산란기를 앞둔 여름철에 갓 잡아 올린 것이 가장 맛있다.”고 적혀 있단다. 아빠는 정약전이 가장 맛있게 먹었을 민어를 보내셨다.


사돈에게 보낼 선물을 고심하다보니 민어가 흡족하셨던 것 같다. 아빠가 민어를 시댁으로 보내신 건 알았지만 키가 1미터인진 몰랐고, 생물 그대로 상자 안에 누워서 푸른빛이 도는 투명한 눈을 부릅 뚜고 배달되었을 거라곤 상상 못했다. 아빠는 말씀하신다. "더워서 회를 떠서 보내면 맛이 없단다. 아가미만 떼서 버리고 나머지는 다 먹는 거다. 먼저 비늘을 제거해라. 채칼(이라니 대패가 나을 뻔)을 이용하면 잘 벗겨진다. 머리를 분리하고 나면 양쪽 살을 발라내고 흰 종이로 덮어서 냉장보관했다가 다음날 회로 먹으면 된다."  참 쉽죠잉?


길이가 1미터인걸? 둘 다 작은 생선 외에는 만져본 적도 없는데? 성인 두 명이 나서도 힘겨웠다. 라이브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감상론, 좋은 재료는 실패할리가 없다는 조리론 둘 다 폐기해야 할까. 이 최고의 재료가 맞이한 라이브는 아무래도 실패할 것만 같다.


식탁에 대각선으로 놓아도 한 가득이다. 남편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도 시작. 어머니는 옆에 앉아서 계속 이런 저런 훈수를 두신다. 아빠의 아바타신가? 말리는 시누이보다 한 수 위는 입으로 민어를 해체하는 시어머니? 칼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고 배를 가른다. 알부터 조심히 꺼낸다. 이 많은 알을 낳아서 이 중 몇알이나 어른이 되고 바다를 누빌까. 알 다음 내장을 꺼낸다. 비늘을 채칼로 벗겨냈다가 (대패 없나?) 칼로 했다가 필러로 했다가 결국 칼로 돌아와 벗겨낸다. 비늘이 내 엄지손톱보다 크다. 지느러미는의 뼈는 정말 단단하다. 배의 노같다. 안쪽 깊숙이 박힌 민어의 노를 잘라낸다.


남편의 몸은 벌써 땀으로 젖었다. 이제 아가미 분리 차례다. 아가미를 분리하는 작업이 제일 어려웠다. 물고기의 호흡기관. 곡선으로 뒤덮힌 부분에 뼈까지 연결되어 있고 피까지 고여 있어 난감했다. 겹겹의 거름막이 민어의 기관 중 가장 복잡하고 선명한 색을 가졌다. 구경꾼이라면 아가미만 함참을 들여다보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떼어내야 한다. 아가미를 겨우 떼어내고 머리도 떼어낸 다음 몸통만 남겨서 크게 양쪽으로 포를 떠낸다. 아빠 말대로 키친 타올을 얹어서 냉장고로 넣고 나니 한숨 돌릴 수 있다. 마무리는 남편의 기도로.


다음날 아빠 또 말씀하신다 "부레 먹었냐?" 부레는 또 뭐란 말인가? 말 그대로 공기주머니겠지만 실물은 도통 모르겠다. "사람들이 말하길 민어는 부레 먹을라고 먹는단다." 부레를 찾아보니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란다. 구백냥을 날리고 백냥만 먹을 뻔했네. 민어는 부레 근육을 이용해서 뿌욱뿌욱 사랑 노래를 부른다는데, 어부가 그 사랑 노래를 들었고, 나에게 배달되었다.


저녁에 들러 부레를 꺼내 잘라본다. 쫄깃해서 껌같지만 종국에서 아밀라아제에게 분해당한다. 좀 질겨서 구워보니 순수한 젤라틴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맛이다. 살짝 구워 먹으니 더 맛있었다. 나라면 5백냥 쳐준다. 아버님이 도톰하게 썰어주셔서 그런 걸까. 민어회는 이제껏 먹어본 그 어떤 회보다 맛있었다. 민어 식감은 양식으로 먹는 회보다 담백하고 달고 살짝 쫄깃하며 아주 조금 아삭하다.  아이들이 허겁지겁 회를 먹는다. 막내는 말한다. "식감이 정말 좋아요. 쫄깃하고요."


리뷰는 목포로 발송된다. 아이들의 리뷰까지 덧붙였다. "크하하. 그럼 또 한 번 사서 보내야지야." 항구에 또 가신다고? 엄마의 텃밭행만큼 긴장시키는구나. 하지만 "와, 정말요? 좋죠."라고 말하는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민어가 비싸기도 하고 그렇게 큰 건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고, 그 무겁고 큰 걸 사서 상자에 넣고 얼음을 채워넣는 일이 귀찮아서도 재발송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다만, 오판이었다. 일주일 뒤 더 큰 민어가 나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부부는 다시 민어 해체쇼를 아이들 앞에서 선보였다. 요령이 생겨 훨씬 더 매끄럽고 짧게 진행되었다. 비록 알을 터트렸지만. 아이들이 회를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알탕에 탄복한다. 아빠한테 "한 번 더?"라고 발송할 뻔했다.


아빠는 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육체 노동에는 통 재주가 없었다. 신분제가 사라지던 무렵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능들을 두루두루 갖추지 못한 아빠. 빠른 두뇌와 타인에게 열리고 엄마에게 닫힌 마음, 강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엄살은 추종불허), 또 굳이 언급하자면(아빠 미안해요) 스트레스를 곁에 두지 않는 몸과 마음을 타고난 분으로 꾸준한 육체 노동을 멀리하셨다. 스트레스 거리두기 차원에서 자식 걱정도 안 하신다는 썰이. 이는 아버지 체력과 건강의 비결과도 일치하는 요소들이다. 노년에 빛을 발하는 재능이랄까.


그런 아빠가 기꺼이 최선을 다해 꾸준히 해온 육체 노동이 자식들을 위한 택배 상자 접수와 손자들을 위한 운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엄마의 텃밭 상자도 아버지의 손을 거쳐서 발송되었다. 택배를 포장할 때 손주들의 달콤한 간식을 빼놓지 말라며 엄마를 닥달하는 것도, 무언가 더 넣을 것을, 생야채보다는 양념하고 조리해서 보낼 것을 종용했다.


부성은 입에서 엄마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엄마는 하던 양념도 씻어내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꼈음을 고백했다. 아무래도 말리는 시누이 위에, 입으로 민어 해체하는 시어머니 위에, 입으로 택배 구성과 조리까지 하는 아버지인 듯 싶다. 엄마가 한번쯤은 아빠의 게으른 부성에 양념된 미나리를 패대기쳐도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만 모든 노동의 끝이 자식의 전화나 손주들의 전화만으로도 보상받았기에 하던 양념은 마무리된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빠 없으면 못한다. 아빠가 고생했다."


엄마보다 훨씬 먼저 택배를 보내기 시작한 건 아빠였다. 주변 농촌의 지인들을 모두 동원해서 택배 상자를 마련하셨다. 방치된 밭에서 키위를 따서 몇 상자, 가을 수확철을 지난 겨울 무화과 따서 보내기(겨울 무화과는 설탕에 절인 것보다 쫄깃하고 달고 즙이 넘친다), 배밭에서 판매 시기를 놓친 배 따서 보내기,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의 집에서 딴 대추를 생 것, 말린 것 다양하게 보내기 등 아빠는 자식을 위한 채집에 최선을 다했다. 아빠 덕분에 야생에서 채집된 열매들을 맛보았다. 때로 황량한 들판을, 무성한 풀숲을, 높은 하늘을 향해 최선을 다해 손을 뻗고 허리를 굽혔을 아빠.


아직도 선명한 기억이 있다. IMF가 터지고 우리는 작은 집에 살았다. 언니들은 결혼해서 바쁘고 명절을 쇠러 오는 가족은 나뿐이어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명절을 함께 보냈다. 서울에서 해가 지기 전에 버스를 탓지만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눈마저 오는 새벽. 아빠는 길을 나섰다. 30분쯤 뒤에 내 손엔 알약 몇 개가 놓였다. 한 알을 먹고 곤히 잠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오랜 서운함 때문인지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날 그 알약은 어디에서 구해오신 것일까. 누군가의 단잠을 깨웠을까? 아빠처럼 체면을 신경 쓰시는 분이 그 시간에 몇 알의 약을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김종길의 시 <성탄제> 속 아버지는 아름답다. 그날의 아빠는 시인의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이윽고 눈 속을/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 흰 눈속을 헤치고 약을 구해오신 아버지의 손에 들린 몇 알의 약. 그날의 약이 아빠를 원망하며 뜨거워지는 마음을 해열하곤 했다.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아빠,  시인의 말처럼 아빠처럼 서러워질 나이엔 눈 속에 따오신 몇 개의 알약이 내 혈액 속에 알알이 흘러 나를 위로해줄 거예요. 2023년의 여름의 민어랑 함께요. 건강하세요.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전 02화 진격의 상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