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엔 무슨 일이 있어나. 미국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설립했다. 경기도 용인군에서는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이 개장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종목에서 양정모 선수가 몽골의 제베그 오이도프를 꺾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건국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전남 신안군 지도면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원나라 시대 청자를 발견하였다. 전남 신안군 한 섬에서 내가 수정되었다. 출시는 다음해로 미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오리온(당시 동양제과)의 오징어땅콩이 출시되었다. 오징어 땅콩은 일본의 과자를 카피했으나 이상의 맛과 인기를 누렸다. 나무위키에서는 오징어 맛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오징어맛이 아니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딱히 오징어 맛이라고 느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땅콩의 존재감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식감과 감칠맛이다. 크기가 각기 다른 오땅은 안을 채우는 땅콩 크기에 비례한다. 땅콩은 엄선된다. 단단하고 바삭한 겉옷은 28번 얇은 밀가루를 입힌 다음(과자 봉지에는 50번이라더니 공식 영상에선 28번이란다) 아주 작고 얇게 썬 오징어채를 묻힌다. 먹다보면 오며드는 맛이라 헤어나기 힘들다.
오징어땅콩의 동기들을 수소문해보자. 1976년 동서 식품의 즉석 커피믹스가 등장한다. 인디언밥, 쮸쮸바, 농심 가락, 해바라기 쿠키, 티나크랙카 등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오징어 땅콩과 인디언밥, 커피믹스이다. 오징어 땅콩의 동기 중 장수 출세가는 커피믹스겠다. 이탈리아 바리스타도 맥심의 커피 믹스는 인정했다는 설이 있으니 오징어 땅콩은 2인자로 남기로 한다.
오땅에 빠져든 건 2023년 5월의 일이다. 여느때처럼 코스트코에 갔다. 늘 있었을 오징어땅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건만 운명처럼 오징어땅콩이 내 눈에 띄었다. 땅콩 강정 6개+오징어땅콩6개=모두 12개가 들어서 1만원 남짓한 가격이었다. 강정에는 관심이 없지만 오땅만 해도 싼 가격이다. 가끔 차량 간식으로 이용하고자 샀으나, 정작 차량에선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차에 보관한 오땅이 자꾸 없어지고, 남편의 배는 불러왔다. 차량 탑승 후 남편에게 묻는다.
나 : 여보, 오땅 먹을까?
남편 : 강정만 남았어.
나 :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자기 배가 너무 나왔어. 내가 오땅 먹지 말라고 했지? 땅콩강정을 먹으란 말이야.
남편 : 오땅이 맛....
오땅에게 주행 거리 10킬로 이상은 허용치 않기로 했다. 장보고 집으로 직행. 이젠 내 차례다. 오전에 일하고 돌아와 점심을 먹기 전에 오땅 절반을 해치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다른 가족들을 염두에 둬야 했기에 타이밍과 양을 잘 조절했다. 처음엔 이틀에 한 개 정도를 먹었다. 나잇살이 두려웠다. 밀가루에 반응하는 뾰루지도 두려웠다. 식구들에게 기부도 좀 하면서 양을 조절한다. 운동을 한 뒤 오땅의 유혹을 견디고 저녁을 하기 1시간 전 기운이 딸리고 뭔가 기분이 언짢아서 남은 오땅을 씹는다. 힘을 내서 저녁을 한다. 어쩐지 저녁은 덜 먹을 것 같은 느낌을 간직한 채 저녁상을 차리지만 변함없이 저녁을 쓱싹 해치운다.
한 달 정도 지나니 거의 1일 1 오땅의 나날이 이어졌다. 오땅이 떨어지고 나면 급한 대로 땅콩강정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땅콩 강정의 맛에 눈을 뜨고야 말았다. 땅콩강정은 오땅에 끼워파는 존재가 아니었어. 당당한 주연이었다. 속빈 강정이란 옛말이구나, 속이 꽉찼다 꽉찼어. 너를 몰라보나디 한계를 절감한다. 강정까지 해치우고 상자가 비면 손을 떨며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거긴 더 큰 오땅을 판다. 150그램짜리 큰 걸 사와서 이틀을 버티는 거지. 그렇다고는 하나 일말의 죄책감, 양을 조금이라도 조절해야 한다는 자각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완전한 1봉을 먹진 않았다. 아이들에게 소량 기부하거나 남편 뱃살에 보탰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덜었다. 거의 1봉은 거의 절반으로 뇌가 인식하도록 신경 섰다. 완벽한 1봉의 행복은 결코 달성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1일 1봉은 달성되고야 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오땅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생일 날 아이들이 선물을 줬다. 오땅 150그램이 편지와 함께 내 품에 들어온다. 이건 먹어야지. 며칠 후, 아버님이 아프셔서 시댁에 들렀다. 어머니 집 식탁에 오땅 150그램이 놓여 있다. 아니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결혼하고 시댁에서 오땅을 본 건 진정 처음이다. 어머니 말씀하신다. "저번에 아들(손주들) 과자 사주면서 엄마는 뭐 좋아하노 물으니까네 오징어땅콩이라고 해가 하나 사왔다. 자"하고 내미시는 거다.(어머니와 나는 마음에 둔 사이입니다. 암요) 아, 오싹하다. 서늘한 기쁨이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 사랑을 느끼며 와작와작 다 먹었다.
이젠 오땅을 절대 사지 않을 거야. 다시 결심한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면서 늘 들렀던 오땅강정 길을 지나친다.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계산대로 가니 우리집 카트에서 오땅강정 상자가 나와 계산대를 통과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차에 가두기로 한다. 이 오땅은 셋째 축그클럽대회날 간식용으로 혹시 몰라 챙겼으나 먹지 않고 집에 들고 와 가방에 모셔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식탁에 똭. 모르겠다. 어제의 피곤이 몰려오자 아침 식사 대신 오땅을 먹고야 만다. 이것만 먹으면 끝이야. 남편이 퇴근한다. 남편 손에 차에 있던 나머지 오땅 상자가 들려있다. 털썩, 졌다. 오땅은 맹렬히 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붕괴되고 있구나~!
엄마는 말씀하셨다. "저번에 짠 게 너무 먹고 싶어서 새우젓 한 통을 사다가 배추에 싸서 한 통을 다 먹었드만 다시는 그게 안 먹고 싶드라. 그럴 땐 몸이 원하는 거니까 원없이 먹어줘야 된다잉" 엄마의 이 이론을 "짠 Theory"라 부르고, 따르기로 했다. 남편이 어제 저녁 들고온 오땅 상자를 연다. 오징어 땅콩 한 봉을 뜯는다. 어떤 갈등도 없이 자제도 없이 한 봉지를 온전히 맛본다. 내친김에 강정까지 뜯어서 와작와작 씹는다. 강정 절반이 줄어들자 공포감이 깃든다. 이제 멈추자. 엄마, 전 틀렸어요. 겨우 멈췄다고요. 제 몸은 대체 몇 봉을 원하는 걸까요?
하지만 역시 엄마는 틀리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오땅이 더이상 먹고 싶지 않다. 일하고 체력이 바닥 나는 11시에도 운동을 끝낸 2시에도 저녁을 하기 전 당이 최저치일 때도 오오 괜찮다. 겨우 이틀째지만 오땅 상자를 눈앞에 두고 참기란 옥녀가 수절하는 거랑 비슷해서 대견하다 할만하다. 욕망의 끝에 다다른 것인가. 엄청난 오땅 허틀을 넘은 기분이다. 엄마의 "짠 Theory"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전까지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1976년 출시된 오땅을 처음으로 사먹었던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하다. 혹시 신안군 앞바다의 보물을 발견하던 잠수부들의 휴식 시간엔 소주와 오땅이 함께 놓여있지는 않았을까? 양정모 선수도 운동을 끝내고 나면 오땅 1봉지를 혹은 금메달 따고 연금으로 오땅을 사먹지는 않았을까? 잡스는 오땅의 존재를 알았을까? 그들에게 훌쩍 날아가 그날의 오땅을 꼭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나는 아직 궁금한 것이 많고 오땅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남았다.
하지만 헤어질 때를 아는 건 아름답다고 하지. 알 수 있다. 순수한 1봉지의 기쁨과 행복을 만끽해야 헤어질 수 있음을 오땅이 알려주려 했다는 걸. 온 가족이 나를 향한 관심을 오땅을 통해 확인시켜줘서 가능했던 오싹한 오땅기. 그래 이제 헤어지자. 힘겨웠지만 행복했다. 오땅,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