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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Sep 23. 2023

제사를 물려받다



어릴 적 제사야 신나는 일이다. 제사를 담당하는 우리집에는 일가친척이 모여들어 다함께 요리를 했다. 먹을 것이 넘쳐났다. 여자들 사이에는 가끔 욕도 오갔다. 싹퉁머리 없는 조카 며느리가 와서 부엌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상만 받아먹고 앉아 있으면 쌍욕이 나오고도 남을 일일 것 같기는 하다. 집안의 나이든 며느리들은 겹겹이 쌓인 권력관계를 잠시 물리고 열심히 지져서 손님을 치른다. 한가한 넷째딸은 가끔 부엌에 가서 엄마에게 육전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커다란 몸짓으로 갓 부친 기름이 둘러진 노오란 옷을 입은 부드러운 육전을 입에 넣어주었다. 몇 점 먹고 나면 다른 제사 음식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음식이 거의 다 되어가면 거실엔 병풍이 등장한다. 병풍이 펼쳐지는 순간이 좋았다. 병풍은 네 폭이었다. 어른 가슴팍까지 오는 키로 개구리, 연잎, 꽃,  옥수수가 수놓아져 있다. 그 중 연노랑에서 분홍으로 그라데이션된 꽃자수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병풍을 펼치면 다른 풍경이 팝업했다. 여자들의 노동이 병풍 앞에서 조명받을 시간이 온다. 노란 전, 하얀 전, 붉은 고추를 얹은 고기, 생선 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아버지가 지방 쓰는 걸 구경하고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회색빛 두루마기를 걸치는 아버지를 본다. 이제 기름 냄새가 사라지고 향 냄새가 공간을 장악한다. 박가들은 절한다. 절이 끝나면 박가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먹고 여자들은 밤늦도록 노동에 허덕인다.


결혼 후 첫 제사는 팀 회식으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건너방에서 잠을 자고 시어머니 나 아버님 셋이서 온갖 것을 부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편에게 배게를 놓아주고 남편 조상을 위한 전을 부친다. 후라이팬엔 오징어가 누워서 키를 줄이고, 새우가 팬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며 등을 굽힌다. 후라이팬에 누울 필요가 당최 없는 쥐포도 눞고, 굴도 데굴데굴 구르며 옷을 단단히 입힌다. 야채 차례다. 버섯, 호박까진 좋은데, 당근이 누우면 일으키고 싶다. 이어 가지도 눕는다. 당분간 냉장고에서 지내도록 민원을 넣어주고 싶다. "요즘은 제사 지내러 오라고 하면 앞치마를 두 개 가지고 온다고 하대? 난 아직까지 아니다." 나는 k 며느리.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여성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자는 의미에서 제사를 받아들였지만 쓴맛은 오래간다.


결혼 초기 시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손님이 많았다. 남편의 시가, 외가 할 것 없이. 한 번은 어머니의 외조카사위가 와서는 소쿠리에 가득 담긴 전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와...이것 좀 봐." 어머니는 뿌듯하게 웃으며 "많재."라고 하셨는데, 그 말과 동시에 조카 사위는 덧붙인다. "우리집 음식이랑 똑같아." 어머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명절이란 내 집에서 타인에게 대접한 음식을 친척 집에 방문해서 대접받고 오는 일인 모양이다. 인생은 어차피 조삼모사인 걸 알지만 피해가기 어렵다.


어머니가 아프신 뒤로 제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명절 2번, 기제사 4번의 제삿상은 내게로 오면서 명절 2번, 기제사 2번으로 줄였다. 추석은 그야말로 차레만 자내는 것이니 간단히 차와 다과로 상을 차리고 넘어갔으면 좋겠고, 설날도 조상 제사와는 별개이니 가족들이 맛난 거 해먹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기 제사를 통합해서 2번으로 지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명절 날 올 손님도 별로 없는데 기름진 음식을 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제사 음식 중 나물은 시어머니가 해주셨다. 장보기와 다른 요리, 상차리기고 치우는 일 등을 내가 한다. 남편은 명절 때야 돕지만 제사 때는 아무래도 내가 하게 된다. 심부름을 시킨다. '소고기 국거리 1킬로를 세 덩어리로 달라고 해서 사와요" 결과물은 불고깃감으로 얇게 슬라이스된 고기가 세 봉지로 나뉘어서 왔다. 남자들의 심부름 유전자에는 "오류 도출, 장차 제외"라는 심부름 유전자가 오래토록 전해져 내려오는 중이다. 이 세 덩어리가 정석에 들어 있다면 편 썬 세 봉지로 적어서 틀렸을 리 없다. 저 덩어리가 게임에 등장한다면 세 봉지로 편 썰어와서 게임머니를 잃을 리 만무하다.


어쩌면 <빨간머리 앤>의 매튜 유전자가 모두에게 내려오는 지도 모른다. 낯선 가게에 들어간 애송이라면 누구든 가게 주인의 질문에 당황하고 가게 주인의 한 마디에 휘둘려서 제대로 된 물건을 사기 힘들다. 이런 사소한 거래에도 경력과 경험과 맞짱이 필요한 법이다. 거기다 예쁜 여자가 화려하게 웃기라도 하면 매튜처럼 엉뚱한 물건을 사올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다해도 어쩐지 좀 화가 난다. 더워서 그런가.


처음 제사를 받았을 때는 거부감이 있었다. 제사 뿐이랴. 가부장제 시스템의 주역이 되면 세상이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사도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첫째, 제사의 의미.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을 추억하기 위한 제사라면 모를까, 일면식도 없는 남편의 조상을 모시는 제사라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둘째, 제사 음식. 몇십년 전만 해도 과일이란 제철 과일을 빼면 상에 놓을 만한 과일이란 없었지 않나. 하지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 등이 뉴턴의 중력 법칙처럼 제사와 차례 때마다 등장하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차림이 오랜 집안 전통이고 어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 역시. 전통이라니, 그것은 상차림의 호스트가 친척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리하는 일련의 움직임이다.


나는 일단 음식을 간소화하고 먹을만한 재료들을 써서 상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제사를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고쳤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음식을 했다. 멀리서 오실 조상님들 대접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즘은 다르다. 이 음식을 직접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름을 두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때때로 즐거운 순간들도 찾아온다. 몇년 전과 달리 남편의 참여도도 높다. 제사 때 절을 하며 조상님들게 내가 원하는 걸간단히 브리핑한다. 그럼에도 상차림 스트레스가 있고, 어딘가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신경증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왜일까?


제사 전 날 큰 아이와 <엘리멘탈>을 봤다. 영화는 심심한 편이었지만 놀랍게도 주인공 '엠버'의 모습에서 제사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발견한다. 주인공 엠버는 이민자 2세로, 부모의 기대와 희생을 마음에 품고 자라는 아이다. 전형적인 동양계 이민자 2세(특히 한국)다. 부모의 꿈을 내면화하며 자라난 엠버는 아버지의 슈퍼를 물려받는게 꿈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한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돕지만 슈퍼에 늘상 있는 자잘한 갈등들에 과하게 분노하고 통제할 수 없다. 슈퍼를 한다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일들에 왜 화나가는지도 모른다. 엠버는 큰 도시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꿈은 슈퍼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슈퍼 운영은 하고 싶지 않다.  어릴적부터 가게를 물러받고 싶다고 기도해왔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 길로 남자친구와 자신의 일을 찾아 떠나는 엠버.


난 조상님들께 바라왔다. 이젠 준비가 되었다고, 제사는 나의 일이고 조상님이 내 뒷배가 되어줄 걸 믿으니까 즐겁게 하겠다고. 그런데 오늘처럼 별 것 아닌 일에 화가 나는 날은 날씨 탓을 먼저 해보지만 역시 아직 제사를 내 일로 정성껏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건가 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절감한다. 아니면 즐거우려고 과하게 애썼거나.


상을 차리고 절을 한다. 아이들은 신이 나 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처럼 카라 있는 상의에 제 아빠 넥타이를 맨다. 동생에게 한복을 입힌다. 향을 태우고 초를 켜고 아버님과 남편이 제사를 주도한다. 나는 잠시라도 쉬고 싶다. 여자들도 절을 해야지는 한가한 소리다. 무뤂 꿇을 힘도 없다. 여자는 절을 안 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 권리는 무슨 권리. 하지만 요즘은 절을 꼭 한다. 차분하고 엄숙한 시간을 보내고 절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남편 8킬로 감량, 가족의 건강, 아이의 성취 등 뻔한 걸 기도한다. 남편 살 8킬로만 할 걸 그랬나....잠깐 후회하며. 기도빨로는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한 건 사실이다.


<어린왕자>에는 "명절처럼 좋다"라는 구절이 있다. 상반된 감정이 충돌한다. 그것은 틀린 비유이면서 동시에 맞다.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장. "명절처럼 좋다"는 지금 나에게 틀린 비유이지만 10년 뒤면 맞장구쳐줄 수 있으리라. 다시 어린 시절처럼 "명절처럼 좋다"라는 비유를 쓸 수 있으리라? 역자 후기에 황현산은 쓰고 있다 "의례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하고,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학실히 설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그날은 분홍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는 나를 내가 용서할 수 있다. 내 삶의 시간에 조상들의 시간이 들어와 섞인, 비범한 시간 속에 내가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40대의 나는 이 의례의 비범한 시간에 젊은 날 제사 무용론을 주장했던 나를 잠시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내가 제사를 정성들여 지낸다. 남편의 조상들도 나의 정성에 보답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 않을까? 보답은 제사 무용론 실현으로~!! 마음을 갈아넣을게요.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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