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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Oct 05. 2023

막내 예찬

막내를 들이시지요


두 개의 꿈이 우리 집안을 떠돌고 있다. 태몽이라는 꿈이. 하나는 둘째 언니가 꾼 것으로 커다랗고 예쁜 네 개의 과일 중에서 한 개의 배를 받아든 꿈, 다른 하나는 엄마가 꾼 것으로 커다랗고 예쁜 수박을 받아든 꿈.  태몽을 꾼 세력들이 태몽의 주인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를 위해 동맹하였다. 둘째 언니는 넷째 딸을 낳을 꿈이라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 집안의 큰 딸과 넷째 땰(나)을 주목하고 있으며, 더 확실한 하나의 수박 꿈을 꾼 엄마는 결혼한 지 1년된 둘째 딸의 딸, 즉 손녀딸을 지목했다.       

         

두 가지 결론이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나온다.     

태몽은 이미 우리 집안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진실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가임기 딸들은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모든 식구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임신이라는 소문에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시기이다.(이상은 <공산당 선언>의 처음 두 문단을 이용한 것임을 밝힌다.)        

       

우리 집안 막내 출산의 역사는 피임 투쟁의 역사이다. 셋째는 피임 투쟁의 실패였다. 종종 발견되듯 막내 아이는 태몽마저도 실종된 경우가 많았다. 셋째만을 위한 태몽은 개별로 찾아오지 않았다.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는 태몽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다행히 셋째 서사의 첫 줄은 태몽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엄마가 주신 첫아이 태몽으로.         

      

엄마는 집안의 태몽 공장이었다. 생신된 꿈은 대브분 제 주인을 찾아갔다.  첫 아이 임신했을 때 엄마가 주신 태몽은 세 아이였다. 바닷가 모래밭에 물이 잔잔히 드나들고 있다. 파도가 닿지 않는 뭍으로 커다란 바위 동굴이 있다. 동굴 천장엔 작은 구멍이 뚫려 빛이 잘 들었다. 동굴 바닥에는 물이 잔잔하고 아이들 셋이 바위에 앉아 발을 까딱까딱 입은 재잘재잘 웃고 있다. 엄마가 주신 이 아름다운 태몽이 셋째의 태몽이 되었다. 엄마는 셋째를 가진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는 지 먹을 건 다 가지고 나온단다. 그 아이가 복을 가져올 거다. 낳아라." 엄마의 꿈과 이런 말이 세째 아이를 가졌을 때 고~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Go는 했지만, 한동안 피박 광박을 면하지 못했다.                


막내가 화투판의 "쓸"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큰 아이에게 관심(주시함)은 90프로지만 사랑은 10프로다. 둘째에겐 사랑은 90프로지만 관심은 10프로이다. 막내는 순도 높은 사랑만이 100프로이다. 늘

맑다. 가족과도 또래와도 닮지 않고 먼 거리에서 자라는 셋째가 막내가 아니었다면 셋째와 나는 여전히 흐렸을 것이다.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면 알게 된다. 아이의 성격은 타고난 성향과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신생아실에서 내 아이를 보면 부모보다 옆 바구니의 신생아끼리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키우다 보면 또래들끼리 닮아 있고, 첫째의 성격은 친척의 첫째와 둘째는 이웃의 둘째와 닮았다. 그리고 막내는 세상의 막내들과 닮았다.          

     

"막내"라는 포지션에는 '쓸'의 감각이 있다. 확실히 대박을 노리진 않는다. 대박을 위한 노력에서 빗겨나 있으면서 우연히 바닥의 패를 다 쓸어가는 “쓸”처럼 쾌감과 만족감, 소소하고 짜릿한 기쁨이 있다. 무엇보다 뒤끝을 남기지 않아 맑다. 막내는 특별한 관찰자이자 타인의 주목에 큰 관심이 없이 자신에게 몰입하는 권위자다. 부모의 주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맑음을 교류한다. 가족의 역학관계 속에서 눈치껏 리액션하면서도 일관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막내는 그러므로 관계의 역학에서 자유로운 윤활유이다.   

  

권위적이고 바쁜 아버지였던 스티브 잡스에게도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쪽은 막내딸이었다고 한다. 아빠도 나에 대해 "어릴 때부터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딱 그런 말을 잘했다."라고 하셨다. 나는 넷째딸이지만 다섯째가 아들이자 장남의 역할을 부여받는 바람에 집안의 막내처럼 자랐다. 막내의 특별한 지위는 가족에서도 가족 밖의 집단에서도 반복된다. 10대의 막내도 20대의 막내도 70대의 막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70대의 송해도 희극인 모임에선 막내였다. “송해야, 커피 좀 타와라”에 커피를 나른다고. 막내 송해가 뚜렷하게 그려졌다. 전국 MC는 귀여움을 받았으리라.

            

오랜 독서 모임에도 막내가 있다. 막내는 언제나 예쁘고, 뭘해도 예쁘고 안해도 예쁘다. 언니들과 같은 예쁨이라면 생기가 있는 막내가 더 예쁘다. 막내 위쪽으로는 마음껏 칭찬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막내에겐 거리낌이 없다. 어느날 나의 집에서 독서 모임 멤버들과 아이들을 초대했다. 흰 머리가 많았던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빨간머리 앤>의 매튜는 친구들 사이에 있는 앤이 홀로 퍼프 소매를 입지 않았다는 걸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서야 알았다. 내 염색은 매튜에게 담배 한 개비도 허용치 않을 명확한 변화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사이였고 5년째 봐왔으니까.      


오호 통재라. 그날의 호스트는 나였으나 주인공은 막내였다. "오늘 옷 너무 예쁜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나는 독백한다. ‘평소에도 저 정도는 예쁘지 않았나? 오늘 특별히 더 예쁘진 않구만.’ ...5시간의 모임이 이어지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포기한다. "나 염색했는데." 반향은 무지막지했다. "그러네요“ 그 날의 주인공이 막내가 아니었다면 상심은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다. 막내는 관용과 허용을 길어올리는 존재다.

  

”마이 막둥~“이라고 상심한 막내를 부른다. 마이 막둥은 상심의 아이콘이자 귀여움의 화신이다. 모든 면에서 늦됐던 아이는 또래와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를 닮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막내의 포지션으로 키워온 성격을 닮았다. 상심한 막내에게 말한다.   

   

엄마 : 엄마가 야단쳐서 속상하지? 중요한 건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거야.

막내 : 엄마가 저를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요?

엄마 : 그럼. 그건 절대로 의심할 게 못 돼.

막내 : 강하게 의심이 드는데요?  

   

막내 유전자가 폭발한다. 상심할 땐 ”엄마를 잘못 골랐다“고 한탄하고, 회복하면 볼을 내민다.배경 지식은 없지만 임기응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 동생은 말한다. 아이의 머리만 떼어서 AI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말을 걸고 싶다고. 작년 11월 할아버지 집에서 마른 고추를 닦을 때 쉬지 않고 2시간 넘도록 고추를 열심히 닦던 오늘의 MVP 막내가 집에 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물었다. ”오늘의 MBTI는 저죠?“  ”응, 그럼~“ 다같이 고추를 열심히 닦았다고 생각할 첫째와 둘째는 의문의 패배를 삼키고 부모가 없을 때 막내를 노린다. 가족 관계의 막내는 운명이지만 사회에서나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룬다면 선택이 된다. ‘막내’를 겪어볼 기회를 맞이하면 알게 된다. 자신의 포지션이 어디였던지 간에 특별한 혜택을 누렸다는 걸.    

 

마음 같아선 어느 집에나 어느 집단에나 막내를 들이도록 권하고 싶다. 이토록 아름다운 막내, 그렇다고 무한정 막내를 들일 수는 없다. 결혼 1년차를 맞이한 조카도 당분간은 임신 계획이 없다. 집안의 가임 여성은 여전히 피임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으므로, 연장자의 꿈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개의 강력한 태몽 앞에 집안의 가임 여성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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