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서울시교육청은 학생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기초학력협력강사를 모집했다. 기초학력협력강사란 교실에서 담임 교사를 도와 학습 부진아를 돕는 역할이다. 초등학교는 1학년 국어와 2학년 수학 과목에 일주일에 2번 수업에 들어간다. 이 역할이 부진아를 낙인 찍는다는 염려가 있어 2022년부터는 교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두루두루 돕는 역할로 바뀌었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기까지 그동안의 커리어를 총동원했다. 출판사 편집자의 꼼꼼함, 세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습시킨 점 등을 강조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따놓은 자격증들도 써서 넣었다. 면접 시간 20분 전에 가서 대기했다. 제 시간에만 가도 될 사람은 다 되는 거겠지만 첫해 나의 열정은 대단했다. 7개 지원해서 단 한 군데에서 연락을 받고 합격했다. 첫아이 임신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13년에 다시 직업을 갖게 되었다. 추운 2월에 신이 나서 온 도시를 쏘다닐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첫해에는 그림책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그림책 수업을 진행했다. 그해의 보람과 설렘은 말로 하기 힘들다. 근래 최고의 해를 보냈다고 해도 좋았다. 매주 그림책을 선정하고 수업안을 만드는 게 어렵지만 즐거웠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열심히 읽어줬던 그림책들로 수업을 할 수 있었으니 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좋아해주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앞둔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엄마는 말씀하신다. "딱 일주일만 가봐라. 처음에만 힘들지 일주일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져야.""알았어."라고 답하고 고분고분 학교에 간다. 엄마 말대로 일주일 저도 지나자 다시 학교가 즐거워졌다. 방학은 무시무시한 거구나.
협력강사는 1년 기간제이다. 매년 지원하고 새로 채용한다. 올해는 집에서 더 가까운 학교에 합격했다. 올해는 진정한 협력강사의 일이 시작되었다.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을 돕고, 담임이 요구한 일들을 하는 것이다. 대단한 일은 없다. 학습지 채점, 부진 학생 밀착 지도,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 교정하기, 짝이 없는 아이와 함께 모둠활동하기 등 소소하고 다양하다. 담임마다 요구 사항이 다르고 수업 스타일이 달라서 상사 아닌 상사처럼 최대한 맞춰야 한다. 동료 없음, 상사 없음, 지정석 없음, 나의 학생 없음. 하여 외로운 직업이고 끊임없이 시험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직업이다.
2학년 수업 시간에 반에서 제일 똑똑한 애가 곱셈구구 놀이할 짝이 없다. 안 하려고 했다. 곱셈구구 순발력 게임은 자신이 없다. 이 순간만 잠깐 버티면 편할 텐데, 아이의 눈빛이 협력을 원하고 있다. "나랑 같이 하자." 칠삼" "이십일"......."팔칠" "48..." 틀렸....아흑 그러니까 안 할려고 했는데, 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틀려준 척이라도 해아 하나? 아이 눈빛이 식었다. 곱셈 구구 나도 잘 알아, 다만 순발력이 좀 딸리는 것뿐인데. 해명할 길이 없구나.
이런 순간은 잠깐 뻔뻔하게 이겨내면 별 타격은 없지만 문제는 정말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의 태도다. 수학익힘책을 채점한다. 3번은 틀렸다."왜 틀렸어요? 맞았잖아요." "틀렸으니 다시 플어봐." " 보세요. 맞았잖아요!" 이렇게 우기다가 책을 채가는 형, 도와주려 하면 손을 쳐내는 형, 담임 선생님의 권한으로 옆에 앉아 있으면 "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형, 대놓고 "안 할 거예요"하는 형. 박정하지만 솔직하고 잘하고 싶은 열망의 몸짓이라고 생각하면 기특하기도 하다.
이런 아이들을 특별히 더 잘 돌보고 용기를 주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아직도 서툴다.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 같다면 협력강사는 조부모 같아서 투정을 받아주고 용기와 사랑만 주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주일에 겨우 2번 잠깐 보는 대상에게 이런 마인드 컨트롤이 늘 통하는 건 아니다.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담임 선생님과 다르게 아이들을 돌아보면서 알게 되는 것들도 많다. A학생이 "100+5=150"이라고 적어두었다. "어떻게 이 답이 나왔어?" 묻자 A의 짝이 자신감 있게 말한다. "제 거 본 거예요" 흠, 너도 틀렸는데. 그 모둠 전체가 A 짝의 틀린 답을 베껴쎴다. 담임 선생님은 쉽게 알 수 없는 오답의 도미노, 오답의 출처를 알 수 있다. 이런 걸 아는 게 뭐가 대수겠는가. 다만 학교 수업이라는 게 담임 선생님의 수업 집중도가 아이들의 실력을 견인하기 힘든 구조라는 걸 이해하는 정도이다. 좀 더하자면 이래서 보조하는 강사가 필요하다 정도다.
자주 효능감이 떨어지지만 나는 왜 게속하는가. 수입과 직업에 대한 필요라는 1차적인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라면, 아이들의 반전미이다. 문제집을 채갔던 아이가 다음날은 웃으며 "저 맞았어요?"라고 묻는다. 또 틀렸는데 틀렸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 머뭇거린다. 어제 짜증을 냈던 아이는 교실 문밖에서 해맑게 공손히 인사한다. 1학기 때 손을 쳐냈던 아이가 그 손을 들어 "도와주세요"라고 말한다. 매일 리셋되는 아이들인지라 마이 막둥처럼 볼이라도 비비고 싶다.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얄밉게 사랑스러운 순간들.
협력 강사로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친구들이 모아준 돈으로 신발을 샀다. 친구들을 만나 말한다.
나 : 아, 학교 가기 싫어.
친구 : 초심을 잃었어~
초심을 잃은 건 부정할 수 없다. 첫 출근하던 날의 마음가짐과 설렘과 기대는 사그라들었다. 실력이 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매일 그일이 그일이다. 그 교실에 들어가면 내 교실이다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상 들어갈 때마다 심호흡이 필요하다. 역할이 분명치 않은 반에 가는 것은 심호흡이 두 세번 더 필요하고 말이다.
아직 협력 강사는 역할이 분명한 직업이 아니다. 서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서 협력한다면 모를까 담임들도 협의할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서로 예의를 차리고 배려하다 보니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가끔 협력 강사를 믿고 정확하게 일을 분배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신나고 고맙지만 그런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학교를 드나드는 강사들은 언제나 대체 가능하고 단기 고용이라 쓰고 버리는 존재이기 쉽다.
내년엔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학교 생활에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좋은 선생님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학교가 바뀌어야 할 점들도 많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선의에 기대고 있는 조직이라는 점, 미숙한 선생님은 있어도 나쁜 선생님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때로 인간적으로 지나치게 매력적이어서 같이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싶은 선생님도 있다.
다만, 담임선생님에게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한 반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협의할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교실 상황은 담임만 알고 그런 점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수업을 누군가와 협의하고 논의하면서 이끌어간다면 더 많은 자기 계발과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부진아를 돕는 강사로서 요즘 학교가 기초학력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실효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지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면 아마 효과를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나처럼 자기 효능감에 시달릴 협력 강사들의 역할이 제 자리를 잡아가기를, 그들이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