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벌 다이어트 초보입니다.
작년 가을 등산만 하던 몸은 실내 운동이 필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청소년회관 헬스에 등록했다. 루이비통 숄더백을 매고 러닝머신을 달리는 중년의 여성, 청바지에 검은 허리띠를 두르고 폴로 셔츠를 갖춰 입고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새벽이나 저녁이나 헬스장을 놀이터 삼으신 할머니를 청소년수련회관 헬스장에서 만났다. 차 마시다 와서 뛰고 뛰다가 점심 먹으러 가는 느낌이다. 이 느낌 고수다. 한없이 자연스럽다. 갖춰입은 차림새야말로 이질적이다. 고수들 구경은 재미있었지만 운동은 재미있지 않았다.
"파워 인터벌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변경했다. 이 동네 여성에게 무려 10년째 최고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다. 작년 가을 인터벌 첫 시간에 강사가 물었다 "이 운동 왜 오셨어요?" "가족들에게 화를 안 내게 된다고 해서요" 모두 수긍했다. 이곳은 근육과 화의 상관관계계가 반비례한다는 걸 증명한 곳이다. 근육이 느는 만큼 화는 줄었다.
육아란 낮동안은 버틸만하지만 해가 지면 화에 무너지는 시스템이다. 체력이 바닥이 나는 즈음엔 폭발하는 것이다. 해질녘 체력 연장의 꿈이 인터벌에선 이뤄진다는 운동장의 간증들이 있었다. 이 간증을 듣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인터벌에 등록하게 되었다.
인터벌이란 고강도와 저강도 운동을 반복함으로써 몸이 고강도 운동을 지속한다고 착각하게 하는 운동이다. 이 동네 인터벌은 하루 네 타임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한 타임 맥시멈 40명을 꽉 채운다. 스트레칭 5분, 댄스 유산소운동 20분, 소도구 근력 운동 25분, 마무리 스트레칭 5분, 총 55분의 파워풀한 운동이다. 끝나면 온몸이 땀범벅이다.
실내 체육관에 들어서자 초보는 다시 헬스장에서 느꼈던 낯선 경계를 느낀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n년차들 사이의 초보는 나이가 먹고 아줌마가 되어도 낯설고 어색한 긴장을 느낀다. 체육관의 몇 가지는 당혹감을 준다. 첫 번째는 전면의 거대 거울이다. 초보자는 맨 뒷줄이라 괜찮지만 사람들 사이로 내 모습이 보일까 이리저리 숨었다. 두 번째는 파워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라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은 어디에?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물다. 강사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 뒤태 미인이야~" 40~60대의 여성들이었다.
맨 앞줄은 9년 차 고수들의 자리다. 나이, 살, 근육 3종을 모두 충천하고 음악을 느끼며 파워풀한 몸사위를 보여준다. 세 번째 놀람도 있었다. 9년 차 배테랑의 자리에 단골 빵집 카운터에서 뵀던 분이 온몸에 잔극육을 가득 채운 채 힘차게 뛰고 계셨다. 빵집의 유니폼보다 잔근육과 땀이 그녀의 실체에 가깝다. 존재에 근육을 붙이자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멋지다. 언니라 부르고 싶다.
동네의 고수들은 어쩐지 <동백꽃 필 무렵>의 시장 언니들 같은 전형성이 있다. 초보자에 대한 척력과 인력을 동시에 지녔다. 실내 체육관 문이 열리자 들어가려는 나에게 고수는 외친다. "먼저 들어가면 안 돼. 강사님이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가는 거야." 입술을 삐죽 내밀고 싶지만 참는다. 어쩐지 미움받을까 봐 조심스럽다. 영낙없이 시장 언니들에게 위축되는 어리바리 동백이다. 강사님도 고수님도 다 이유가 있겠지.(아직 모름)
운동한 지 1년 만에 드디어 짐볼 운동을 하게 되었다. 짐볼은 맨 앞쪽 창고에서 제일 뒤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9년 차 고수가 나에게 외친다. "가운데 서" 첫 지시다. "네." 나는 거수경례라도 할 기세다. "뒤로 던져~" "네에" 이런 명령 아무나 받는 거 아니지 않을까? 나 인정받는 건가? 1년 정도는 돼야 운동 식구로 받아들여주나? 운동하기도 전에 땀나게 공을 뒤로 보낸다. 혹여 9년 차가 던진 걸 못 받을까 봐 긴장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시장 언니들은 동백이를 구박하는 듯 챙긴다. 동백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한 언니(김선영)는 말하지. "원래 지 동생 톡톡 건드리는 언니들이 남이 내 동생 건드리는 꼴은 못 보겨는겨"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주차장에 공사 잔해가 남아 있다. 그 사이를 뚫고 차를 빼야 한다. 아저씨가 말한다. "운전 잘하는 줄 알았는데 못하네~" 나오던 인터벌 고수들이 발끈한다. "안 보여서 그러는 거지. 차에선 이 철근들이 안 보여요 감이 없고." 하며 나를 보고 인자하게 웃는 언니들. 형님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들은 내일보다 예쁜 오늘을 위해 같이 땀을 흘리는 사이다. 식사를 공유하는 사이가 식구라면 우리들은 식후를 공유하는 사이다. 마이 막둥은 말했다. "엄마 내 방귀 냄새는 구수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천기누설이다.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실을 마이 박둥이 뀌었다. 청출어람 막내 유전자, 밀레니엄 막내는 차원이 다른 솔직함을 지녔다. 우리들은 나한텐 구수하지만 타인에게 범죄에 가까운 방귀와 트림을 공유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선가 만나면 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일까.
"갈까 말까 할 때 가고 먹을까 말까 할 땐 안 먹는 거예요."라고 강사님은 말씀하셨다. 이 말을 충실히 따를 만큼 인터벌 운동은 재미있었다. 잽을 날리는 동작들을 하며 "어이"하고 외칠 때는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내가 복싱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잽을 더 열심히 날렸다.
강사님이 들어오라고 하기 전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강사님에겐 규칙이 있다. 절대 신음 소리 내서 타인의 운동을 방해하지 말 것. 잠시 쉬는 틈에 옆 사람과 잡담하지 말 것. 과연 강사님 말씀대로 힘들 때 가끔 신음 소리가 나오지만 그걸 참으면 희열이 있다. 신음소리를 참아서 예쁨 받고 싶다.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에야 "뛰어"라는 말이 "니업"인 걸 알아간다. "싱글 리어"는 "싱글 니업"이었다. 복근 운동 5분이 가장 싫었지만 근육이 생겨서 복근 운동이 두렵지 않다. 복근이 어디 있냐요? 뱃살을 들어내면 나온다는 게 우리들의 주장이다. 아령 뒤로 들어 올리기도 이젠 몸을 떨지 않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구령을 할 만큼 호흡이 가벼워졌다.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당혹스럽고 좌절감을 주는 것도 있다. 동작은 계속 틀린다. 초반 20분 동안 네 곡의 댄스를 하게 되는데 어떤 곡은 2주에 한 번 정도 하게 된다. 익힐만하면 잊어버리고 익힐만하면 잊어버린다. 아무도 모르는 실수인데 혼자 창피해서 꼭 입술을 깨물며 웃는다. 나는 이 웃음을 짓고 싶지 않는데 틀릴 때마다 또 민망해서 웃는다. 좀 모자란 것 같달까. "징 징 칭기즈칸'은 그중 가장 몸에 익지 않아서 '징... 징"만 나와도 1년 전 쌩초보로 돌아가고 만다.
9년 차의 위엄을 언제쯤 따라갈 수 있을까? 여전히 거울 보면서 운동하는 것도 어렵고 타이트한 의상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운동이 이제 버겁지 않고 가족에게 화를 내는 용량이 현저하게 줄었으며,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는 점이다. 근육은 화와 반비례하고 행복과 분명 비례관계가 아니겠는가.
김현은 <행복한 책 읽기>에서 "몸이야말로 정신적인 것이다"라고 썼다. 예민함은 전적으로 정신의 문제라고 믿었던 젊은 시절, 이 문장에 꽂혀서 몸과 정신의 관계를 재정립해 보았다. 예민함은 몸의 상태와 직결되어 있었다. 몸을 돌보면 정신도 보답했다.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과 체력은 일상의 여유로 보답해 주었다.
어둑해진 안양천을 달리다 보면 50명에서 10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이 댄스 강사의 동작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다. 예전 같음면 이 통속의 장면에서 비껴 나 있었겠지만 이젠 그 움직임과 마음의 합일을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자전거복을 입은 채로 그 사이에 들어가 통속의 춤사위를 이질감 없이 열심히 따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루의 끝에 매달린 피로를 날리는 여성들의 풀이가 사랑스럽다. 나이가 들면 근육은 저장되지 않으므로 매일매일 반복해서 유지해야 하듯, 내일도 그렇게 대비해야 하겠지. 매일의 근육을 저장해야 하는 나도 임계점을 넘을 때가 올까? 가만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