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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Oct 08. 2023

뚜르 드 한강, 쌍욕의 로드

티티카카를 몹니다.


올해 6월부터 자전거를 사서 한강에 나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중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타보지 않았지만 서툴지는 않다. 자전거를 타고 처음 두 달 동안 평생 먹었던 욕보다 더 많은 욕을 먹었다. 어떤 날은 잠깐 중앙선을 침범해서 욕을 먹고, 어떤 날은 중앙선을 밟지 않았는데도 욕을 먹었다. 어떤 날은 한강에서 올라와 숲으로 올라가는 게들을 보호하다가 "미친년"이 되었다. 욕은 순식간에 아주 쉽게 날아들었다. 자전거 하수라서 때로 나비도 내 뺨을 촤라락 치고 지나갔다. 나 정도 속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비가 도로를 횡단하다가 내 얼굴에 부딪힌 것이다. 그랬다. 나는 사뿐사뿐 나비마저 무시하는 한강 자전거 하수였다.


한강 자전거 도로 속도는 20킬로미터 이하로 제한된다. 로드 자전거(포장 도로에서 빠르게 주행하도록 만들어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30킬로 정도는 속도를 내는 것 같다. 떼를 지어서 미끈덩하게 저지를 쫙 빼입고 촤라락 촤라락 촤라락 "지나갈게요~"라고 외치며 따릉이와 mtb와 나의 미니벨로(도심용 접이식 자전거)를 제끼고 저 멀리 사라진다. 마주오는 로드 자전거들은 "지나갈게요" 대신 "씨발" "미친년" "아이 씨" "야이.." 등등을 날린다. 여성의 이름으로 가장 파워풀해지는 건 엄마가 아니라 욕이다.


'정말 너무해. 내가 등산복 입고 자전거 타서 그래? 내가 깔맞춤 안 해서 그런거야? 자전거 신발 없이 운동화 신어서? 자전거가 작아서 그런 거야? 아님 내가 여자라서 쉬운 거야?' 억울하다. "니들이 애 셋 키워봤어? 애들 아침 차려놓고 이 새벽에 나와서 내가 속도 좀 방해했다고 쌍욕을 들어야겠어? 이 신발들아~"라고 외치고 싶었다.


청바지에 검정 벨트를 맨 할아버지가 쉬고 있는 로드 라이더들에게 말을 건다. 이건 얼마인지 어떤 종류인지, 등등. 몇 살 더 어려보이는 미끈덩 저지를 갖춰 입은 라이더 무리가 청바지에 검정 벨트를 맨 사나이의 말을 무시한다. 청바지는 좀 더 필사적이다. 곰살맞은 웃음까지 지어가면서 답을 얻고자 한다. 라이더들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블랙 미끈덩 저지가 몇 마디 답을 준다. 아무래도 이 복장의 격차가 나를 자극한다.


한동안 한강에서 복장의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로드 라이더들의 복장을 스캔했다. 브랜드가 엉덩짝이나 등짝에 크게 박혀서 모를 수도 없다. 장비발 없이 스포츠가 가당키나 하겠나. 그중 라파와 메카니즘이라는 브랜드가 눈에 띈다. 집에 돌아와 검색, 이런 당근에서도 상의 하나가 10만원이 넘네. 자전거복을 향한 열망은 애타니즘이 되어갔다.


이대로는 괴롭다. 로드들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로드 무리도 이유가 있을 테지.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잖아. 떼로 몰려가다가 속도에 영향을 받으면 자신들끼리 부딪힐 수 있고, 안전에 취약할 수 있지. 자전가 신발은 페달에 꼭 끼어 붙어 있으니 떼기도 쉽지 않고 자전거 높아서 내리기도 쉽지 않고 부딪히면 나가 떨어지잖아. 떼로 몰려다릴 때는 정속(남을 위협하는 속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지. 결국 그게 다른 소수의 자전거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제일 싫은 일이 브레이크를 잡는 일이잖아. 내가 이 속도를 내기 위해 굴린 패달 수, 에너지를 생각하면 멈추고 싶지 않지. 한 번의 패달도 아깝고. 이것 때문에 나도 위험한 순간들을 만났었지. 두 달 정도 지나자 겨우 브레이크 잡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뛰어넘었잖아. 그러니 로드 라이더들은 오죽 하겠어. 멈멈추기 싫겠지. 하지만, 도로는 나만의 쾌감을 위한 장소가 아니잖아?


당신을 이해해요. 이 말은 때로 씁쓸하다. 아무리 화려한 수사를 덧붙여도 아니 붙이면 붙일 수록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록 이해는 멀어지고 감정은 돌이킬 수 없다. 화려한 수사로 이해를 덧칠할수록 이해불가가 투명해진다. 안타깝게도 타인을 이해하려고 설명하는 순간은 이미 호감은 저 멀리 사라지고 난 다음이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틀린 일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이럴 땐 시간이 필요하다. 실망은 꼭 타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양쪽이 어긋난 타이밍을 맞닥뜨린 것일 가능성이 크므로. 내가 로드 라이더들을 이해하는 데는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테지.


지금은 10월, 시간이 괘 흘렀다. 나는 하루 네 시간 라이딩도 거뜬히 해낼 정도가 되었다. 라이딩하는 동안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정말 애써온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쌍욕을 먹으니 자전거가 빨리 늘었다. 추월은 불가피하지만 신중했고, 중앙선은 최대한 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또 오랜만에 욕을 먹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화가 났다. 추워진 날씨에 매시 소재인 여름 바지를 입고 달리자니 헐벗은 느낌이 들어 더 서럽다.


 아무래도 로드 라이더를 미워하지 않기란 힘들 것 같다. 이럴 바에야 마음껏 미워해볼까?


그들은 자신이 길이 road가 아니라 lord인 줄 안다. 자신의 속도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바로 쌍욕을 날린다. 쌍욕의 이유가 자신의 속도 방해다. 정작 자신들은 추월할 때 중앙선은 마구 넘나는다. 다른 라이더들이 비껴주고 속도를 줄여줘야 가능한 일이다. 앞사람 압박용으로 촤르르촤를르 촬촬 거리며 뒤에서 압박하며 비키도록 길들인다. 무리에 여자가 끼어 있거나 무리의 수가 많으면 욕을 하지 않더군. 미친 듯 달리는 한 명이나 두 명의 남자들은 거침없다. 그들도 무리가 크거나 여자가 끼어 있으면 욕을 뱉지 않을 지도 모르지. 떼로 몰려다니면서 "지나갈게요~"라고 하는데 영혼 없이 "지나가실게요옹"하는 느낌이라 그것마저 얄밉다.


자동차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도로 전체가 공포였지만 가장 공포스러운 건 오토바이였다. 그야말로 무법자였다. 자신들은 위협적으로 운전하지만 자동차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토바이가 화를 내면 무조건 사과한다. 안전에 취약하고 대부분 생계를 위해 달리기 때문이다. 괜찮냐고 진심으로 묻는다. 그의 속도나 진로에 방해가 되었다는 걸 미안해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지만 그가 더 안전에 취약하다는 이유, 더 바쁘다는 이유를 감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드 라이더들도 자전거 도로에서 강자라면 도로에서더 취약한 하수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배려할만한 실력을 갖췄으니까 말이다.


조금 후련하다. 솔직히 이 말만은 안 하고 싶었는데......., 부럽습니다. 당신들의 미끈덩 저지의 지퍼가 내려가고 바람에 휘날릴 때 만들어지는 웨이브는 아름다워요. 깔맞춤 센스도 부럽고 눈이 즐겁습니다. 올블랙으로 착장한 라이더들을 보면 <무빙>의 정예 요원 블랙 못지 않은 간지가 넘쳐요. 페달을 굴린 채로 하늘을 날 것만 같아요. 특히 여성들의 헬멧 밖으로 나온 말꼬리같은 풍성한 머리칼은 이상형입니다. 당신들의 속도도, 떼지어 가는 동안의 율동감도 좋아요. 그러니, 제발 한강의 하수들에게 여유를 보여주세요.


쓰고 보니 아무래도 최고의 대안은, 내가 로드 라이더가 되는 거 아닐까! 로드 라이더로 전국 투어를 마친 동생에게 의견을 구한다. "mtb 타, 로드는 위험해" 남편도 같은 반응이다. 로드와 티티카카의 간극이 너무 크다면 mtb로 바꿔서라도 로드와의 간극을 줄여야 할까? 아니다, 로드다 로드! 나도 road bike 타고 lord처럼 나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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