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채록사 이야기
운동장 죽순이에게 이야기란 젓줄이다. 천식을 앓는 둘째 때문에 운동장의 햇빛과 자연을 어떻게든 누려야 했고 아이들의 유년은 햇빛과 흙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믿었다. 벤치의 시간은 수다로 채워진다. 초등 입학 이후 레이싱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매끄럽지만은 않다. 상대의 자랑 지뢰를 밟기도 하고, 돌려까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자주 왜곡되고 틈새로 욕망이 새어 나와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진흙 속의 진주처럼 할머니들의 입담은 때로 구원이다.
노인들의 이야기에는 특유의 여유와 독한 유머가 있다. <같이 삽시다>에 등장하는 노년의 헤로인들처럼. 아름다운 문숙에게 박원숙은 말한다. "나 좋아하던 오빠들 반은 죽고 반은 아파." 100억 빚에 허덕이다 갓 이혼한 혜은이에게 김영란은 말한다. "두 번 이혼해 봤어? 그게 더 힘들어." 맥락을 이탈하는 센 화법에는 유머와 애잔함이 섞여 있다. 추석 때 아빠와 tv를 시청한다. "막 쑤셔분께 지쳐분다잉" <무빙> 의 빌런이 막 쑤셔서 히어로가 지쳤나? 아니다.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이 지쳤다. 어떤 캐스터도 해설가도 못 따라갈 생생함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해가 기울 무렵 손주를 데리러 왔으나 집에 가지 못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남편이 아파서 병원 다녀오고 먹고 싶은 걸 해먹이고 그중엔 담배도 있다는데 병명은 감기가 아니라 대장암이시란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코인 티슈 같다. 적시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펼쳐진다. 이 동네 살기 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이야기하시는데 손자가 부른다.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더 듣고 싶은데, 엔딩맛집이 문을 닫는다. 한동안 나의 엔딩 요정님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코로나가 터졌고, 엔딩 요정님은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2021년 겨울 관악구에서는 "구술채록사"를 모집했다. 구술채록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직업을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관악에 사는 여성의 이야기를 채록해 관악의 역사를 재구성해보는 일이다. 이력서를 야무지게 써서 제출했고 합격했다. 인류학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구술채록사 과정을 이수했다. 엔딩 요정님의 이야기를 채록할 수 있지 않을까?
고시촌의 집값이 서울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던 IMF 전후의 고시촌을 경험한 원룸 경영자를 찾고 있었다. 엔딩 요정님이 섭외되었다. 전화로 약속 잡았지만 아이가 아파서 안 된다, 아이가 유튜브 촬영을 해야 해서 안 된다, 차일피일 미루시더니 결국 거절하셨다.
하수에겐 때로 '무'에서 시작하는 무식한 열정이 있어 무작정 동네 경로당을 찾아간다. 경로당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엄청난 경고음이 울린다. 무서워서 튀었다. 춥고 창피하다. 고시촌을 헤매다 원룸을 운영하는 절을 방문했다. 절에 붙어 있는 원룸은 동그란 네모처럼 이상했다. 절에서 배추를 절이고 계시던 스님은 구청 여성가족부 사업 설명을 드렸더니 "관악구에 산다고 말하기도 창피해. 어디 가서 말도 하기 싫어. 동네가 이게 뭐야. 난 그런 거 못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과연, 스님은 스러져가는 고시촌의 원룸 경영인다웠다.
또 다른 원룸 주인을 섭외했다. 하숙부터 시작해서 원룸을 경영하는 아주머니셨다. "이 OO 국회의원 부인이 오래전 선거운동 할 때 나눠주던 대추차가 그렇게 맛있더라"로 시작해서 정치인과 구청장 욕으로 끝나가나 싶더니, 다시 이 OO 국회의원 부인의 대추차 이야기로 돌아갔다. 대추차는 아주머니께 무엇일까. 추운 날 받았던 위로일까, 배신의 맛일까. 고시촌 섭외는 실패했다. 아주머니들은 빚쟁이를 쫓는 사람들처럼 뾰족했다.
나에겐 난곡 이야기가 남았다. 1990년대 오랜 달동네에서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철거민이 생겼다. 난곡의 철거민을 찾고 있었다. 1990년 문을 연 주민자치 도서관에 가서 관장님을 만나려 했으나 실패. 그때 "내가 알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공공근로자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성당 지인 중에 난곡 철거민이 있다고. 저녁 7시 약속을 잡고 그분을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났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추운 날의 약속을 지키고자 앉아계신 할머니. 당신의 오지랖과 그날의 추위를 미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난곡의 산기슭에 붙어 있는 집에 도착. 주인아주머니를 호출, 섭외의 주인공이 등장하셨으나, "아니 여길 왜 온 거야. 이 사람을 왜 데려와"로 시작한 일리 있는 짜증이 기슭의 두 여자들을 흔들었다.
상심한 나와 할머니. 할머니는 미안해하시면서 대각선에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신다. 그 집도 난곡에 오래 살았다며. 말렸지만 초인종은 울렸고, 작은 스피커의 목소리는 납득할만하게 야멸찼다. 문전박대에 이어 초인종박대까지.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골목의 두 사람 모두 미안함으로 땅으로 꺼지고 싶다. 구술자와 채록사 사이에 생겨야 할 라포(친밀감)는 이 할머니와 생길 판이다.
할머니가 대로 건너편 당신 집으로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며 굳이 안내하신다. "난곡에 오래 살았어?""아니"" 모두 실패. 마지막 카드인 듯 할머니가 옆집 할머니 집 문을 열더니 물으신다. "여기 난곡에 오래 산 사람 있어? 여기 구청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나야. 어서 들어와" 그렇게 해서 나의 첫 구술자를 만났다. 왜 파랑새는 항상 등잔 밑에 사는 걸까?
2022년 10명의 채록사가 기록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결과가 좋아서 2023년 구술채록 2기가 시작되었다. 하수에겐 열정이 있지만 2번째를 맞은 하수에겐 그만한 열정이 없다. 열정을 대체할 실력은 자라지 못했는데, 무엇으로 올해의 이야기를 채울까. 섭외는 구청과 연계된 경로당에 서서 소개받아 이루어졌다. 섭외까진 수월했으나, 나의 구술자는 관악의 역사를 기록하기엔 난도가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악구 50년 사가 주제라 구의 역사를 함께 들어보고 싶은데, 그녀는 자꾸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질문을 환기시켜도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섭외는 수월했지만 이야기와 주제가 멀어져서 난관에 빠졌다. 고민을 듣던 남편이 말했다. "아버지도 어린 시절이야기는 밤새도록 할 수 있는데 장년 이후의 이야기는 한 시간도 못하신대." 엄마도 그랬다. 할아버지가 남길 생선만 기다리느라 밥을 혼자 늦게 먹던 기억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던 엄마.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던 이야기들.
작년의 구술자도 어린 시절 이야기는 묻지 않아도 상세하게 기억했다. 교회새벽송을 갔을 때 다니던 길, 시간, 그날의 느낌, 집에 돌아왔을 때 밥을 해놓고 기다리던 집안의 여성들 이야기까지. 올해의 구술자도 어린 시절 사과밭을 밟을 때 폭삭폭삭 백설기를 밟는 느낌까지 기억해 냈다. 결혼 이후의 삶은 고통과 인내였다. 이야기는 없고 입출금 내역만 존재하는 통장 같달까. 잔고가 마이너스가 아니라 행복한.
작년과 올해 구술자 두 여성 모두 함께 밥 먹고 일을 나서고 운동하는 밀착된 친구들이 있었다. 올해의 구술자는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남편은 부담스럽지만 친구와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고 했다. 유년 시절 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친구와 함께 마음껏 노래 부르고 방에서 지치도록 춤을 추는 시간들에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와 남은 생을 함께 하기를 꿈꾸고,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그녀와 지내고 싶단다. 그녀의 노년은 찬란했던 유년과 맞닿아 있다.
생떽쥐베리는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어린 시절에서 왔다.”라고 썼다. 노년은 다시 한번 자신의 유년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자식과 배우자로부터 독립해 내가 온 곳으로 비로소 갈 수 있는 시간.
카뮈는 <이방인>에서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을 가수 양희은은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대부분 명랑한 할머니는 과부야"라고. 어느 노부인은 여자 동창들 모임을 하고 돌아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남편이 묻는다. 왜 그러는가? "영감 있는 여자는 나밖에 없어!" 노년의 영감은 온전히 자신의 놀이와 호기심에 집중할 수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길목을 막은 빌런이 되어 있다. 내 아버지처럼.
나의 유년, 아이들의 유년기를 생각한다. 나의 가족들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은 현연관계라서기보다 유년기를 함께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에서 만났던 들 이리 애틋하고 즐거운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무한박복할 수 있을까? 돌아오지 않을 유년이라고 생각했지만 많은 세월을 꿋꿋이 버텨 다시 유년을 맞이하게 된다 생각하니, 나는 노년을 준비하기보다 유년을 다시 맞이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유년을 자금보다 더 소중하게 풍성하게 담아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