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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05. 2024

쥐밤

엄마의 아주 작은 산 밤

  

  “너 언제 여기 올래?”

  “응, 그렇잖아도 이번 주 일요일에 가려고 했지. 일요일에 갈게요”  

   

  평소 친정엄마는 딸 셋에게 전화를 걸어 오라 가라 하지 않는다. 오면 와서 기쁜 것이고 오지 않아도 서운함을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식들은 편하지만 무심해지기도 한다. 한 해 두 해를 넘기며 내 나이 세는 것에 신경을 쓰는 동안 부모님은 어느새 80을 훌쩍 넘겼다. 늘 자주 찾아봬야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래저래 핑계가 생기면 쉽게 흐지부지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두 분이 함께 계시니 마음 한구석이 안심되는가 보다. 

     

  연로한 부모님 두 분이 사는 곳은 자동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휴일 점심을 같이할 요량으로 집을 나선다. 길가의 가로수가 겨울을 준비하느라 색을 바꾸고 하나둘 잎을 떨어뜨리니 완연한 가을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은 너무도 뜨거웠다. 9월이 다 가도록 30도를 오르내려 이대로 여름이라는 계절에 갇히나 싶었는데 언제 그랬나 싶게 잊히고 새로운 계절에 마음이 들뜬다. 


  추석을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지금은 제법 쌀쌀함도 느껴진다. 최근 들어 엄마가 부쩍 무릎이 아프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어 날씨 때문인가 했는데, 친정집에 도착하여 발견한 하얀 비닐봉지 안의 밤으로 이유가 분명해진다.      


  “엄마, 밤 주우러 다닌 거예요? 그러니까 무릎이 아프지. 그냥 사 먹어요.”

  “5시에 후라시 들고 산을 돌아다니는 남자와 여자가 다 주워가서 하나도 없다.” 

    

  나의 말에 전혀 의미가 다른 엉뚱한 대답을 하신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새벽에 일찍 나온 사람들이 다 주워가 주울 밤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깜깜한 이른 새벽은 무섭기도 하여 6시 반쯤 산에 오르는데 5시부터 손전등을 들고 산에 오르는 남자와 여자가 밤새 떨어진 밤을 모조리 주워간다는 것이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올해는 제법 많은 밤이 열렸다고 한다. 그래서 낮이면 동네 노인들이 수시로 오르내리며 소일하는데 새벽이 되면 밤사이 쌓인 알 굵은 밤을 줍기 위해 흡사 전쟁터가 되는 모양이다. 엄마는 그 밤을 주우러 매일 이른 아침에 산을 올랐고 그로 인해 관절의 통증이 심해진 것이리라.

     

  나의 엄마는 나물 뜯고 바지락 캐고 도토리 줍는 일련의 채집 일을 참 좋아한다. 그러니 낮에 오가며 줍는 작디작은 밤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해 뜨기가 무섭게 산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새벽이면 엄마보다 더 일찍 오는 젊은 사람들이 그 밤을 모두 주워가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속에 그들은 아주 비정하고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산에 굴러다니는 밤이래야 상품성이 떨어지는 엄지손톱만 한 쥐 밤일 텐데 왜 그리 매일 주워가는지 나 역시 그들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노인의 소소한 기쁨을 빼앗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 늙은 엄마가 산을 오르며 품었을 실낱같은 바람을 빼앗은 욕심쟁이 같아 미워지기까지 한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산에 올라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밤을 줍는 모습을 그려보니 마음이 짠하다.

     

  지난날 손과 발이 젊어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가 떠오른다. 오래전 아마도 30년이 다 되는 일인 듯하다. 5월 어느 날에 고사리는 지금이 제철이라며 서산에 가자고 하였다. 그 당시는 논두렁이나 밭두렁 또는 산자락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봄나물을 손쉽게 채취할 수 있었는데 엄마는 나의 첫 직장인 서산을 오가며 고사리에 눈독을 들인 모양이다. 서산목장 근처의 초지는 고사리가 자라는 최적의 장소이다. 파릇하게 올라오는 풀을 먹는 소 떼들 저 멀리 고사리를 뜯는 사람이 보이곤 하였다. 엄마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목장에서 개심사로 들어가는 초입 어디쯤부터 엄마의 나물 캐기는 시작되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고사리를 뜯는 둥 마는 둥 하였는데 엄마는 도착해서 그곳을 뜰 때까지 거의 반나절 동안 고사리며 봄나물을 담고 또 담았다. 힘든 기색도 없이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도 않았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전혀 힘들지 않다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냐고도 했다. 엄마는 머리에 석양빛이 닿을 무렵에야 등을 폈는데 땀 식은 얼굴이 저물어가는 햇살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얼마 전 동생 부부와 함께 엄마를 모시고 제부도에 갔다. 너른 갯벌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 듯 말한다.

     

  “그때는 호미로 조개를 한 소쿠리 캤지.”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모양이다. 엄마에게 있어 산은 나물 밭이고 바다는 조개 밭인가 보다.

      

  매일의 희망과 맞바꿔 담은 산 밤 한 봉지가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자식 줄 욕심으로 한톨 한톨 모아 챙긴 것을 생각하면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작은 밤이지만 어떻게라도 잘 삶아서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본다. 냄비에 밤을 넣고 찬물에 삶아 다시 찬물에 넣어 식힌다. 잘나가는 블로거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했는데 껍질이 쉽게 까지지 않는다.

     

  “밤은 반 잘라서 수저로 떠서 먹어라.”  

   

  엄마는 사위가 밤을 좋아하니 직장 가서 심심할 때 먹으라며 삼척동자도 아는 비법을 알려준다. 늙은 엄마가 새벽마다 밤 줍느라 아픈 무릎도 잊어가며 바쁘게 움직였을 생각에 작고 못생긴 밤이 웃프다. 그래서 지금 엄마의 밤을 조심스레 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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