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억을 더 해

메밀막국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계신 엄마랑 점심을 먹으려고 날마다 친정에 갔다. 냉장고에는 늘 해 먹을 만한 재료가 충분해서 엄마랑 먹고 싶었던 이런저런 음식을 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가끔은 외식을 하고 싶기도 했는데 허리가 아파 걷기 힘들었던 엄마를 모시고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아 포장 음식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친정 근처에 엄마와 내가 좋아하던 메밀막국숫집이 있었다. 메밀막국수를 포장해 가면 1인분 만으로도 양이 넉넉해서 엄마와 나누어 먹기 알맞았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메밀 막국수를 먹은 날은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1인분을 포장해서 친정에 갔다.      

    

“엄마, 이거 먹자. 엄마 좋아하는 막국수야.”

“아니, 너는 어디서 이렇게 맛대가리도 없는 걸 사 왔니? 이런 걸 누가 먹는다고” 

‘잘 드셨으면서 오늘따라 왜 그래?“     

평소에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엄마라서 많이 놀라고 당황했는데 치매가 진행되면 그럴 수 있다는 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알게 됐다. 이제 엄마는 병이 깊어져 집에 계시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계신다. 음식도 드시지 못해 경관식을 하는 상황이니 엄마와 먹었던 음식은 다 지나간 일이 돼 버렸다. 더는 엄마와 함께 갔던 식당에 갈 일도 없었다.  

         

형제자매가 있어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나눌 사람이 있는 걸 거다. 끝없이 추억담을 나누어도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웃다가 울다가 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추억담으로 끝내기에 아쉬운 날, 엄마와 먹었던 메밀 국숫집에 언니들과 갔다. 언니들도 왔던 곳이라 주문하기 전부터 할 이야기가 많았다. 비빔 막국수와 함께 메밀전과 메밀전병을 주문했다. 국수가 나오기 전에 자그마한 그릇에 어린아이가 먹을 만한 양으로 보리밥이 나오는데 밥을 애피타이저로 먹는 혹은 후식(고깃집에서 먹는 볶음밥)처럼 먹는 문화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 같다. 보리밥을 비벼 먹고 나니 메밀전과 전병이 나왔다. 배추와 쪽파를 넣은 메밀전도 맛있지만, 메밀전병이 특히 맛있었다. 엄마와는 국수만 먹었던 것 같아서 순간 엄마도 나와 함께는 아니지만, 이 전병을 드시긴 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한창 음식을 먹는데 주인이 다가오더니 ‘우리 집 음식에는 고기를 넣지 않는다’라며 전병 속 재료에 관해 설명해 줬다. 평소 요리를 잘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내 식대로 편하게 시도하기는 좋아하니 집에서 해 볼 요량으로 메밀부침 가루를 사 왔다. 함께 맛있게 먹은 언니들에게 다음 가족 모임에 메밀전병을 해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물론 해 보고 잘 되면 가져가고 안되면 혼자 먹는 것에 만족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와 메밀부침 가루 포장지를 자세히 보니 메밀부침 가루에는 메밀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고 메밀가루 40%, 밀가루 60%였다. 아마도 메밀가루만 들어 있다면 찰기가 없어서 요리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일 것 같다. 포장지에는 메밀전을 만드는 방법만 적혀있었다. 메밀전병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딱히 어려 울 것 같지는 않아서 속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김치를 꺼내서 물기를 짜고 잘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볶았다. 적당히 볶아졌다 싶을 때 물기를 꽉 짠 두부를 으깨서 섞어 가며 저어줬다. 다 됐다 싶을 때 불을 끄고 잘게 썬 부추를 넣었다. 맛을 보니 그럴듯했다. 이제 반죽만 하면 된다. 물과 가루의 비율을 재기보다 적당한 반죽이 될 때까지 물과 가루를 넣었다. 되다 싶으면 물을 넣고 질다 싶으면 가루를 넣는 식으로. 요리 못하는 사람은 이런 데서 티가 난다는 걸 알지만 습관처럼 그렇게 해 버린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반죽을 올리고 어느 정도 익었다 싶을 때 속 재료를 가운데에 넣고 돌돌 말아 주었다. 식당에서 먹은 것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흉내 낸 것 같았다. 한 번에 이쁜 모양까지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패로 얻은 요령으로 다음 모임에 가져갈 만할 것 같다.       

    

엄마와 먹었던 음식들은 과거에만 묻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끊임없이 엄마를 기억하며 음식을 해 먹을 테고 그 이야기는 메밀전병처럼 새로운 기억까지 더해 더 그리워하고 더 깊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