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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봄 Oct 20. 2023

살아가는 힘

마지막 음식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병원 음식이 싱거워서 맛이 없다며 집에서 소금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것만으로 부족하셨는지 새우젓으로 간을 한 달걀찜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급하게 해서 가져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엄마와 언니, 올케 둘 다 병원에 있었고 결국 요리에 제일 자신 없던 내가 해야만 했다. 많이 드시지는 못했지만, 달걀찜을 맛있게 드셨고 아버지에게 직접 해 드린 마지막 음식이라 가슴 한구석에 오래 남아 있다. 달걀찜을 해서 가지고 간 날은 찐 고구마도 가져갔는데 잘 드셨다. 아버지의 건강이 극도로 위험하던 때라 드시는 것 하나하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병원 식단에 에이스 크래커가 나와 놀랬던 적이 있다. 싱겁기 짝이 없는 병원 음식에 과자라니…. 이걸 드셔도 된다는 건지 간호사에게 확인하고 드렸다. 아버지는 그걸 그나마 잘 드셔서 식사 사이사이 간식으로 드시라고 병원 편의점에서 사다 드렸다. 평소라면 바삭한 에이스 크래커가 맛있다 하겠지만 아버지가 드시기에는 눅눅해져야 했기에 미리 봉지를 뜯어 놓고 두어 시간 지난 다음에 드렸다. 달걀찜, 찐 고구마, 에이스 크래커…. 돌아가시기 전 입원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더욱 그랬겠지만, 아버지가 드신 몇 안 되는 음식은 잊기 힘들게 됐다.               

아버지는 당뇨와 혈압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드실 수 있는 음식에 제약이 많았지만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아버지 불만은 여기는 왜 음식을 안 주냐는 거였다. 평소에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편이셨고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셨다. 국수는 가늘어야 하고,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고 하셨고 김치는 겉절이처럼 익지 않은 것을 좋아하셨다. 김치 담그는 일은 엄마를 늘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여서 익지 않은 김치만 드시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아버지가 살아오신 힘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게 대충 먹는다거나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먹는다는 것은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 같다. 무엇을 먹는지와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을 규정하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집에서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도 다 뒤로하고 엄마는 이제 요양병원에 계신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 면회를 하고 나온 어느 날, 언니들과 아버지 산소를 가자는데 뜻이 맞았다. 산소 갈 준비를 해 오지는 않았지만, 근처에 가서 간소하게 사면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아버지 산소가 있는 파주에 도착했고 산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그곳에는 다행히도 청주와 북어를 팔고 있었다. 과일이 있을까 싶어 판매대를 기웃거리다가 ‘에이스 크래커’가 눈에 띄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맛있게 드셨던 몇 안 되는 음식이라 반가우면서도 집어 드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겨울바람이 부는 아버지 산소에는 햇살이 따듯했다. 성묘를 끝내고 산소 앞에 앉아 언니들과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간간이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언니들과 나눈 이야기 끝에는 부디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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