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쟁반
운이 좋게도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계속 살고 있다. 일부는 너무 많이 변해서 기억을 더듬지도 못할 정도이지만 일부는 남아 있어 훅 시간 여행을 하곤 한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지금 사는 곳과 멀지 않다 보니 차로 다니다 보면 그곳을 지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내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를 운전해서 지나가다가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섰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자그마한 교문이 보였다. 거기가 후문이었는지 정문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그쪽으로 학교에 다녔다. 교문이 언덕에 있었고 교문 앞에는 문방구도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바라본 그곳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야트막한 언덕이던 지형은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운동회 날이 떠올랐다. 두 살 터울인 오빠랑 남동생이 다 같이 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내가 3학년이나 4학년이었을 거다. 운동회 오전 순서가 다 끝나고 점심시간이 됐는데 엄마가 오지 않아서 교문에서 집 쪽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그때 엄마가 한참 늦게 왔던 거랑 둥근 쟁반을 머리에 이고 왔던 거랑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해 나무 그늘이 아닌 운동장 구령대 뒤쪽 그늘에서 밥 먹었던 일까지. 병에 든 우유를 엄마가 가져왔던 것도 같은데 무슨 밥을 먹었는지 반찬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운전하다가 떠 오른 오래전 운동회 날 생각 끝에는 아침에 우리 셋을 운동회에 보내고 점심을 준비하고 나서 머리에 이고 서둘러 왔을 엄마 모습이 그려졌다. 야외용으로 도시락을 준비할 때 쓰던 동그란 찬합 대신 둥근 쟁반에 담아 온 걸 생각해 보니 집에서 먹던 그대로를 먹이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러니 머리에 이고 올 수밖에 없었겠지.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두 언니 도시락도 싸서 일찌감치 보낸 엄마가 운동회 날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서 우리와 같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갓 지은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건 지금 드는 생각이다. 난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밥을 해준 적이 있나 싶다. 그때는 늘 엄마가 뭔가를 할 때마다 늦는 습관에 짜증도 났었을 테고 불평도 했겠지만 그런 기억은 다 사라지고 엄마가 해준 운동회날 밥이 그리워졌다. 내가 어디 가서 그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영영 돌아오지 않을 날이지만 희미하게라도 기억이 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도 궁금하고 같은 시간을 보낸 오빠랑 남동생 생각도 궁금해서 카톡을 보냈다. 가족 앨범 속에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화홍문 앞에서 운동회 날 한 명씩 찍은 사진이 이날이었는지도 물었다. 다른 운동회 날에는 학교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학교를 나와 화홍문까지 가서 찍었으니 좀 다른 느낌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는 세세한 것도 잘 기억하곤 했다. 오빠 얘기로 이날은 오빠가 6학년 때였다고 했다. 다른 운동회 날에도 점심이 늦어 엄마를 기다리며 집 쪽으로 가다가 집까지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 날은 그럼 집에 밥을 먹고 왔겠네 라고 하니 그건 아니란다. 엄마랑 같이 학교까지 와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남동생은 결혼하던 해에 우리가 살던 집터에 새로 집을 지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동네가 많이 바뀌었지만, 곳곳에 예전 흔적이 있어 옛날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고 했다. 이날에 대한 기억은 엄마가 머리에 둥근 쟁반을 이고 농고 사택 옆 개울가를 따라 걸어오시던 모습만 생각난다고 했다. 농고 학생들이 실습하려고 이쪽에 논이 많아서 등하굣길은 시골 같았다. 그러니 멀리 걸어오는 엄마 모습이 넓은 논 너머로 보였으리라.
늦게라도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도 운동회를 즐기셨겠지. 우리 남매들은 달리기를 잘했으니까. 나는 늘 계주까지 뛰었으니 마지막 순서에 있는 계주를 항상 보셨겠지. 오빠와 남동생 얘기를 합해보니 화홍문에 가서 사진을 찍은 날도 이날이었다. 엄마는 우리 셋이 함께한 마지막 운동회를 기념하고 싶으셨나 보다. 짧은 시간 사거리 신호에 걸려 서 있다가 시작된 오래전 기억에 그때 거기에 그대로 머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