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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봄 Oct 20. 2023

수고스러움 그 너머

아버지는 오랫동안 위가 아프셔서 소화제를 달고 사셨다. 등을 두드리면 위 통증이 가라앉는다며 두드려 달라고 하시거나 죽을 끓여 달라고 하실 때도 많았다. 위 때문에 흰죽을 드실 일이 많다 보니 가끔은 흰죽 대신 시금치죽을 끓여 드리기도 했다. 시금치죽은 흰죽이 거의 완성될 때쯤 데친 시금치를 넣고 조금 더 끓이면 된다. 죽을 끓이는 일은 인내가 필요하다. 자리를 잠시라도 비우면 넘치거나 눌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소화가 안 돼서 드시는 죽이니 완전히 풀어져야만 했고 그렇게 되기까지 손으로 저어가며 지켜보기를 긴 시간 동안 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죽을 끓여 드리거나 등을 두드려 드리던 일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몇 해 뒤 동네 내과에서 좋은 의사를 만나면서 해결됐다. 그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얼마간 드신 뒤로 오랫동안 달고 살았던 소화제를 끊어도 될 정도로 좋아지셨기 때문이다. 늘 소화제를 드시던 아버지도 그렇고 엄마 혼자 자식들 도움 없이 죽을 끓이거나 등을 두드려 드리는 일을 하실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드신 죽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아 아프면 당연히  흰죽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 있듯이 아파서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위에 아주 적은 부담만을 주어야 회복이 될 거로 생각했다. 뚜껑을 열어 놓은 채로 팔이 아플 정도로 오래 저어가며 끓이던 죽. 뽀얗게 끓인 뒤 오목한 그릇에 덜어 간장을 살짝 더해 먹는 죽은 아플 때 몸과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아파도 절대 죽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죽을 좋아한다. 특히 식은 죽을 좋아한다. 아마도 아플 때 먹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드실 죽을 끓여서 드리고 남은 걸 먹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모르겠지만 밥보다 고소한 맛을 더 느꼈던 것 같다.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것이 편해진 시대다. 죽 전문점도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져서 아플 때 직접 끓이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쉽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 영향이었는지 아이가 아파 죽을 먹여야 할 때 사지 않고 흰죽을 직접 끓였다. 병원에서 약 처방과 함께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흰죽을 먹이라고 하는 이유도 있었다. 아파서 입맛이 없으니 아이들은 흰죽을 좋아할 리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 흰죽을 먹고 나서 다른 죽을 먹고 싶다고 하면 아픈 건 어느 정도 나아졌다는 신호로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죽 전문점에서 다양하게 죽을 사 주었다. 아이들은 아플 때 돌봄을 받으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텐데 밤을 새워 가며 엄마가 곁을 지켰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거기에 오랜 시간 직접 끓여 준 흰죽을 먹었던 기억도 아이들에게 남기를 바란다. 편리함을 따지자면 죽 전문점에서 사다 주면 그만이지만 나무 주걱을 쉬지 않고 저어가며 끓인 죽이니 그 정성이 더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빨리 낫기를, 다시는 아프지 말기를 비는 마음과도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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