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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봄 Oct 20. 2023

따듯한 맛

두부

콩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보니 국산콩을 재료로 한 제품들은 GMO 식품일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콩을 밥에 넣어 콩밥을 해 먹으면 쌀에 있는 성분과 궁합이 잘 맞아 완벽하다고 한다. 맛도 물론 좋다. 검정콩으로 콩자반을 만들어 먹거나 간식으로 먹을 콩 볶음을 하면 과자 대신 먹기 좋다. 직접 기른다면 더 좋겠지만 쉽게 살 수 있는 콩나물도 있다. 콩나물의 활용도도 무궁무진하다. 무침이나 국물 요리에 들어가면 좋고 찜에도 잘 어울린다. 삶은 콩나물에 맵거나 짜지 않게 초장을 얹어 먹으면 샐러드 대용으로 좋아 저녁 끼니를 가볍게 하고 싶을 때 밥 대신 가끔 먹는다. 간단하게 비지를 만드는 일도 비교적 쉽다. 콩을 불려서 삶고 나서 물을 섞어 가면서 믹서에 갈아주면 된다. 비지를 만드는 방법에 물량을 늘리고 견과류와 소금을 적당히 섞어 갈아주면 두유가 된다. 마지막으로 두부가 있다. 

     

어릴 때 집에서 두부를 만든 적이 있다. 온 식구가 다 모여 명절 같은 분위기였고 만드는 일을 거들기에  어렸는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날은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 만드셨다.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간수를 넣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과 부엌에 김이 뿌옇게 잔뜩 끼었던 일이 생각난다. 맛있게 먹었던 일도.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향에서 두부를 만들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서 아니면 자주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아버지는 두부를 엄청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프라이팬에 두부를 올리고 파 마늘 고춧가루 간장이 들어간 양념장을 조금씩 끼얹으며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온 식구가 밥상 옆에 놓인 곤로에서 바로 구운 두부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아주 많다. 뜨끈하고 짭조름했고 양념이 살짝 타면서 풍미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뜨거워서 입안을 데일 수 있어 호호 불어가면서 먹었고 덩어리째 먹는 것보다 밥그릇에 얹어 숟가락으로 으깨서 밥과 함께 먹는 것이 더 맛있었다. 아버지는 두부를 먹을 때면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며 두부 찬양을 늘 하셨다. 그때 먹었던 입맛 때문일까? 지금도 찌개나 국에 들어간 두부보다 부침을 해서 양념장을 올려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집에서 두 번 다시 두부를 만드는 일은 없었지만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는 건 왜일까. 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 직접 두부를 만들어서일 테고 당연히 직접 만든 두부였으니 맛도 좋아서 그랬을 거라 짐작해 본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태자면 온 식구가 매달려 뭔가를 하는 일 자체로 즐거웠던 건 아닐까 싶다. 두 해전 오빠가 안성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나서 뒷마당에 가마솥 아궁이를 만들었다며 언제 두부를 같이 만들자고 했다. 그러자고 말은 했지만 언제 그럴 수 있을까 했는데 지난 추석 때 모여 드디어 두부를 만들었다. 콩을 불리고 믹서에 갈고 가마솥에 넣어 끓이고 건져내어 물기를 빼 비지를 만들고 남은 물을 다시 가마솥에 넣어 간수를 넣고 순두부를 건져내고 두부 틀에 면포를 깔고 두부를 만들기까지 아버지가 함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만이 아니라 오빠도 언니도 남동생도 모두 그랬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백열등이 켜 있던 자그마한 부엌에서 김이 뿌옇게 나고 몽글몽글 두부가 만들어지는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따듯했던 느낌과 맛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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