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수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연백이다. 그곳 음식 가운데 편수는 만두와 비슷하지만 속 재료가 다르고 빚은 모양도 다르다. 편수는 찬 국물에 먹는 여름 음식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뜨끈한 국물에 편수를 넣어 드셨고 식초를 꼭 넣으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식구 가운데 아무도 식초를 넣어 먹는 방법을 따라 하지 않았다. 뜨거운 국과 식초라니. 그저 만둣국 정도로 생각하고 즐겼는데 만두와는 다른 음식이라는 건 어른이 된 다음에 알았다.
아버지께서 ‘오늘 편수 해 먹자 ‘하시면 반죽부터 속 재료, 육수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반나절 이상 온 식구가 매달려 함께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편수를 할 때마다 편치 않은 얼굴이셨고 아버지는 향수에 젖어 편수를 드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편치 않았던 엄마의 얼굴에 대한 답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친정을 드나들며 알게 됐다.
-네 아버지 하고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가 어떤 여자랑 같이 들어오지 않겠니.
-누군데 그 여자분은?
-글쎄, 아는 동생이라면서… 그런데 그냥 온 게 아니고 아버지께 편수를 해 드리려고 왔다는 거야. 나더러 편수 할 줄 아느냐고 하더니 모른다니까 자기가 나가서 재료를 사 와서는 그걸 만들더라. 아무래도 아버지를 좋아하던 여자가 아니었나 싶은 게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
-그랬어? 아버지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엄마도 참, 아버지 고향 동생 아니었을까?
-아니라니까.
고향 음식을 먹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엄마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지 싶다. 다른 여자에게 배운 음식을 평생 해 드렸으니 편수를 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셨을까. 게다가 엄마 고향은 충청도, 먹어 본 적 없는 음식을 하려니 더 힘드셨겠지. 요즘이야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가 많다 보니 초보라도 어렵지 않게 음식을 할 수 있겠지만 엄마가 살던 시절에는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편수를 알려 줬던 여자분은 친척 아저씨가 아버지에게 소개해 주려던 고향 여자였다. 그분은 아버지가 결혼한 걸 알고도 편수를 해 주러 왔다는 건데 참 대단한 용기이자 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란 참 묘해서 어릴 때 먹고 자란 음식을 젊었을 때는 찾지 않았더라도 결국 나이 들어 다시 찾게 되는 힘이 있다. 그 여자분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중요했을 편수는 생전 먹어 본 적 없었던 엄마 손으로 들어와 아버지 살아 계실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니 그 힘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