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7살 무렵 아버지가 강화도로 인사발령이 나서 따로 살았다. 아버지만 강화에 장기 투숙 형태로 여관방을 구해 계셨다. 두어 번 정도는 방학 때 놀러 갔던 기억도 난다. 겨울방학이었는지 창에 김이 잔뜩 서려 밖이 보이지 않는 버스를 타고 강화까지 가는 동안 멀미를 했다. 한번은 오빠랑 아버지 숙소 옥상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놀다가 낮잠을 자던 투숙객이 올라와 그만하라고 해서 풀 죽었던 적도 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집으로 오셨는데 버스 정류장으로 오빠랑 남동생과 같이 마중을 나갔다.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리시면 함께 집으로 걸어왔는데 아버지 손에는 우리에게 줄 간식거리가 들려있었다. 어린 나는 집안 사정과 상관없이 색다른 경험을 하던 시기였지만 엄마로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일도 걱정이었을 테고 두 집 살림하려니 평소보다 더 알뜰하게 살아야 했으리라. 방 하나를 세를 주었던 때도 그때였다. 엄마와 우리 남매들은 나머지 방 두 개에서 지냈다. 방을 세를 줄 정도로 살림을 아꼈으니 식비도 줄여야 했을 텐데 그때 자주 수제비를 해 먹었다. 부엌에 사람도 들어가 앉을 만한 파란색 플라스틱 통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늘 밀가루가 담겨 있었다.
6년이 지나 다시 집 근처로 아버지 근무지가 옮겨지면서 모든 절약모드가 해제됐다. 나는 어려서 그랬는지 수제비를 자주 먹는 이유도, 방을 세 준 이유도 그때는 몰랐고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다. 두 언니와 오빠는 수제비를 너무 많이 먹어 물렸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때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맛있는 수제비를 싸게 팔아 단골로 이용했었으니까. 어릴 때 먹던 수제비도, 대학 때 먹던 수제비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집에서 소면이나 메밀국수를 이용한 음식은 가끔 해 먹으면서도 칼국수나 수제비를 해 먹을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어릴 때 자주 먹었으면서도 내가 직접 만들지는 않아서일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수제비 생각이 났다. 비와 수제비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끈한 국물 생각이 수제비로 연결된 것 같다. 아무튼, 처음 수제비를 만들 생각에 예전에 먹던 수제비 생각도 나면서 약간 들뜬 기분으로 준비를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반죽을 해서 한 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좀 더 쫄깃한 수제비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맹물에 말린 표고버섯을 넣고 끓였다. 국물이 어느 정도 우러나온 뒤에 감자랑 양파를 썰어 넣고 잠시 끓이고 나서 수제비를 떠 넣었다. 반죽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조금씩 떼어 냄비에 넣었다. 수제비가 익었다 싶을 때 어슷 썬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예상대로 국물과 함께 먹는 수제비 맛은 좋았다. 어릴 때 먹던 수제비도, 대학 때 먹던 수제비도 그 맛이 어땠는지 또렷하지 않았는데 그 맛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밀가루 반 컵이면 혼자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양이 많았다. 그러니 어렵던 때 밀가루를 쌀 대신 자주 이용했으리라. 엄마의 알뜰함에 맛있는 수제비도 먹고 궁핍 없이 지냈다. 그 덕에 나는 가난을 가난인 줄 모르고 자랐다. 엄마에게 물려받고 싶은 것은 그런 점이겠지. 어려움을 어려운 줄 모르고 지나갈 힘이 생긴다면 다 엄마 덕분이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