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9화

by 순례자

H국의 K 교장이 도착했다. 그는 아담한 키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졌다.남도 사투리를 하게 쓰는 그는 목소리가 크고 명쾌했으며 성질이 급해 보였다.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서둘러 교장실로 갔다. P교장은 K교장과 파견 교장 동기여서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있었던 중국 P한국국제학교에서 열린 해외교장단 회의에서 만나서 오늘 있을 얘기를 이미 나눴다고 했다. P교장은 차를 마시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 선생님 평소에 했던 대로 긴장하지 말고 잘해야 돼!"

"K 교장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라고 편안하게 웃으며 서둘러 교장실을 나갔다.

P교장은 자신을 독실한 불교 신자라고 자주 얘기했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불경의 일부를 인용해서 말하곤 했다. 첫 회식 때 교직원들에게 술을 따라 주고 건배를 권할 때, 내가 예수쟁이임을 밝히고 술 마시기를 정중히 사양하자, 술 대신 물을 따라 주며 분위기만 맞추라고 했다. 그리고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특별한 인연이니 함께 있는 동안 서로 좋은 인연을 맺자고 했다.


교장실에서의 면접은 1시간가량 진지하게 이어졌다. 주로 논술지도 경험과 계획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무슨 교재를 쓰는지 나만의 논술 비법과 실적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당시 서울대 특례 시험은 논술 시험이었다. 또한 그는 내가 1년 만에 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논술수업을 참관하자고 했다. 그는 수업 내내 교무수첩을 펼쳐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이따금 일어나 모둠 학생들의 토론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봤다.


2시간에 걸친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났다. 교장실에서 K교장과 마주 앉았다. 나는 긴장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교무수첩을 펼쳐서 잠시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나는 내일 아침 H한국학교로 돌아갑니다. 내가 돌아가면 임용 관련 서류를 먼저 보낼 것입니다. 학사 일정과 교육과정을 함께 보낼 테니, 선생님이 맡아야 할 수업과 특히 논술 수업 준비를 잘해오시기 바랍니다. 그럼, H한국학교에서 만납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말했다. K 교장은 학교 정문을 나서다 고개를 돌려 빠른 말로 다시 명쾌하게 말했다.

“여기 학교 학사일정이 끝나는 대로 지체하지 말고 2월 17일까지 오면 좋겠습니다. 오시자마자 수업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지난 몇 달간에 암울했던 내 일상의 어두움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주변이 환한 빛으로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P 교장에게 결정된 상황을 전하고 정중히 감사를 드렸다. 교장실을 나오자마자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놀라지 마! 드디어 H한국국제학교에 가게 됐어. 최종 합격했어!


다른 사람에게는 학교를 옮기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꼼짝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내 상황에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


나는 이따금 그 당시의 일을 다시 떠올려본다. 몇 번을 생각해도, T한국학교의 P교장의 배려와 적극적인 도움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이 P교장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또한 H한국국제학교는 많은 선생님들이 가고 싶어 하는 경쟁이 치열한 1순위 학교다. 그런 학교의 교장이 배려한 임용면접 절차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교사로서 내가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학생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실하게 일하는 이 땅의 많은 교사들 중에 한 사람일 뿐이었다. K교장의 말을 빌면, 서울대 입시를 위한 논술 지도 교사가 급히 필요했다. 새로 선발한 선생님들 가운데에서도 논술 전문교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내가 논술교육을 일찍 시작했고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대학의 언어교육원에서 논술 수업을 오래 한 경력이 있었다는 것이 K교장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1년전 내가 처음 중국으로 나올 때 함께 면접을 본 선생님들과 면접 후에 차 한잔을 했다. 모두 이력이 뛰어났다. 출신 대학은 물론이고, EBS 강사, 수능 모의고사 출제위원, 문제집 출간 등 내세울 경력이 많았다. "교사가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다는 는 것이 그렇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나?" 스스로 반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해외 학교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인 H국제학교 교장이 네게 이런 예외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막다른 절벽에 선 내게, 주변 사람들을 통해, '내가 일하는 것을 보라.'는 메세지를 보내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들아 평안히 가거라!”라는 음성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다시 울려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빈 교실을 찾아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나 T시에 온 지 1년이 못돼서 H한국국제 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사진-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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