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땡, 땡, 땡’ 기찻길 건널목 차단기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벽지며 천장이며 바닥이 모두 낯설었다. 거실로 나와서 창밖을 보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2층 버스들, 그 옆으로 지나가는 트램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그 소리는 도로위에 레일을 깔고 운행하는 전기 철도 차량인 트램이 지나가면서 주의를 알리며 내는 종소리였다. 우리는 어제까지 16차선의 도로가 직선으로 쭉 뻗은 황량한 회색빛, 무채색의 도시에서 살았다.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다.
아들을 깨우러 가는데 벌써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있다. 저도 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가 컸나 보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함께 등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맞은편에 대형 슈퍼와 쇼핑몰이 눈에 들어왔다. 횡단보도 앞을 지나서 10여분 거리에 학교 가는 길은 안전하고 깨끗했다. 아들 혼자 등하교를 해도 안심할 만했다. 학교 앞 건물은 사회체육센터로 수영장, 배드민턴장 등을 이용할 수 있었다.
아들을 방학중 영어 교실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방학중 프로그램으로 개설한 대입 논술반으로 향했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처음 보는 나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고 미리 준비한 교재를 나눠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26명 남짓한 학생들의 학습 배경이 다양했다. 학생들의 부류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다 온 학생들 4~5명, 미국이나 영국 교육과정에 더 오래 공부한 아이들 12명이 있다. 이 학생들은 한국어 보다 영어가 더 자연스러운 학생들이었고 외국 교육과정에서 오랫동안 교육받은 학생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부모님이 주재원 혹은 외교관 등으로 약 3년 이상 해외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10명 정도였다. H한국국제학교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운 재외국민교육기관이다. 이들이 H한국국제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한국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나는 ‘재외국민특별전형’을 위한 교과 지도와 진로 진학지도를 담당한다. 간혹 ‘3년 특례’, ‘12년 특례’ 혹은 ‘해외이수자전형’이라고도 부른다. ‘12년 특례’는 전교육과정 동안 한국학교에 다닌 경험이 없는 수험생 자격으로 한국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 학생들이 4명 정도였다. 입학 정원에 대한 제한이 없다. ‘3년 특례’는 한국 교육과정에 한 학기라도 다닌 적이 있으면 무조건 ‘3년 특례’ 자격이다.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3년 특례’ 자격이다. 각 대학 학과의 모집 정원에 3% 이내만 모집한다. 전 세계 특례전형 지원자의 숫자를 생각하면 소위 SKY 인기 학과에 입학하기는 이 전형으로도 매우 어렵다. 한 과에 1, 2명 정도만 합격이 가능하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대학 진학 기대 눈높이는 높았다. 전원이 의대와 SKY를 목표로 삼는다. 한국과 다른 것은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나 성적으로 날 선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 특례 입시의 서류 평가가 1차적으로는 내신 성적이 반영됐지만, 둘째로는 각 대학별 고사가 당락을 좌우했다. 또한 이 당시에는 서류 평가에서 공인된 성적, 이를테면 기본 어학시험인 Toefl, Teps 등과 SAT, AP, IB 성적이 학생 평가에 큰 영향을 줬다. SKY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인내하며 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로 날 선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교실 수업은 늘 화기애애했다. 질문에 꼬리를 물고 웃고 반박하고 유쾌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논술 수업 시간도 늘 재밌게 했다. 논제 토론도 적극적이었고 이어진 글쓰기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일부 학생들의 글 솜씨는 한국에서만 교육받은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의 특례입시 원서 접수와 면접, 지필고사가 7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진행된다. 3월 초에 개학을 하면 약 4개월 동안 고3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대학별로 고사의 방법과 일정이 많이 달라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모두 교사의 몫이라 이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