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12화

by 순례자

오랫동안 근무한 홍콩의 교육 환경과 한국의 특례입시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홍콩은 150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홍콩의 교육 시스템과 학교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학교(Aided School; 등록금 없이 정부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학교로 정원의 30%를 학교가 자율 선발하고 70%는 학생 선호를 반영해 교육청에서 배정) 외에 70여 개의 국제학교, 70여 개의 사립학교가 있다. 이 국제학교와 사립학교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DSS(Direct Subsidy School)와 나머지는 대부분은 보조금을 받지 않는 PIS (Private Independent School)이다. 상당수는 영국학제에 의해 운영된다.


공립학교는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을 제공하거나 학비가 낮다. 반면에 국제학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 환경과 다양한 국제 교육 과정을 제공하며, 이에 따라 학비가 매우 높다. 몇몇 최고급 국제학교의 경우, 12년 과정을 모두 마치려면 수백만 홍콩달러가 필요하다.


홍콩 같은 국제도시에서 한국국제학교(KIS)의 위상을 단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곳에는 다양한 국제학교들이 존재하며, 각 학교마다 교육 과정, 특성, 학생층 등이 다르다. 무엇보다 진학을 희망하는 나라와 대학이 판이하기 때문에 최상위 국제학교가 KIS 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홍콩이 한국과 매우 유사한 교육특성을 가지면서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홍콩은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전 과목 평균점수가 최상위권인데 학생들 간의 점수 편차가 매우 낮다. 한국도 평균점수가 상위권이지만 학생들 간 편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홍콩은 과목별 최하등급 학생 비중도 대부분 10% 미만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학생의 가정 배경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낮은 편이고, 최하위 25% 가정 배경에서 국제적으로 최상위 25%의 성적을 거둔 역경극복학생(resilient students)의 비율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홍콩이 2000년대 이후 교육계획을 끊임없이 해온 긍정적인 결과이다.

물론 홍콩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와 학교에서의 행복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낮은 편이다. 홍콩은 높은 교육열과 교육비 부담, PISA의 높은 순위, 치열한 입시경쟁, 사교육시장의 번성, 학생들의 낮은 행복감 등에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홍콩의 인구는 약 700만 명이고 서울의 약 두 배 정도 면적이다. 그런데 대학은 8개에 불과해 고교 졸업생 중 약 4분의 1만이 홍콩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게다가 학교의 적극적인 학생 유치로 중국의 수능 시험인 가로카오 최상위 성적 2%대의 학생들이 홍콩의 대학에 입학한다. 홍콩대나 홍콩과기대, 중문대 등 주요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따라서 홍콩의 명문대 입학 경쟁은 한국보다 치열하다.


이런 국제도시에 사는 현지 교민이나 주재원으로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자녀 교육 패턴은 일관된다. 영어교육 기회에 대한 열망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영어 교육과정이 잘 갖춰진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려고 한다. 2000년대 현지 교민의 숫자는 20만명 정도였다. 그들은 자녀들을 중등과정을 마치면 미국, 영국, 캐나다로 대학을 보냈다. 최근에는 홍콩대나 홍콩과기대, 그리고 한국 대학으로 보내는 숫자가 늘어 가는 추세다.



주재원 자격 등과 같이 비교적 단기로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자녀를 외국에 보내기도 하지만 주로 한국 대학에 보낸다. 한국대학에 보낼 마음을 정하면 한국학교 고등부로 전학 오게 되는 것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의 숫자가 적은 이유도 있지만 영어 교육에 대한 열망 때문에 홍콩한국국제학고 학생 수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각 학년이 1개 반이고 때로는 두 개 학년을 하나로 묶는 경우도 있다.


K 교장은 학생 유치를 위해서 늘 고민했다. 본인이 한인 교회나 성당을 돌며 홍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도 업무를 하나 주었다. 나는 한국대학 입시 결과를 바탕으로 홍콩한국국제학교의 우수성과 현황을 알리는 칼럼을 2주에 한 번씩은 지역 한인 신문에 게재해야 했다. 학생 유치가 얼마나 절박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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