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14화

by 순례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말은 집을 떠나 여행을 다니거나 이민을 한 사람이면 가슴깊이 깨닫게 된다.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게 된다. 기존에 내가 축적해 온 지식도 경험도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에 거의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집 떠나면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존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중국인과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살펴보자. 들의 이민 지원 시스템은 이민자가 타국에서 생존해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경제적 성공을 동시에 달성하는 독특한 모델을 수 백 년간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한 예로 유대인 청년 한 사람이 타국의 공항에 도착하면 입국 시 공항 픽업 서비스와 함께 Kosher 식품 패키지-현지 음식 적응 기간 최대 6개월-와 6개월의 무료 기숙사 이용을 제공한다. 그리고 경제적 자립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훈련을 시키고 창업 지원을 한다. 또한 대학 등록금 지원, 혼인비용 지원 그리고 민족 전통성 계승을 위한 역사 교육을 지원한다.


그런데 홍콩을 비롯한 이민사회 괴담은 믿거나 말거나, ‘한국인을 가장 조심하라.’고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한인 모임에 가면 이민자의 곁에 도와주는 척 다가와서 온 마음을 다쓰는 척하다가 땡전 한 푼 안 남기고 탈탈 털어간다고 한다. 실제로 홍콩에도 그런 사례가 많이 떠돌았다.


이민 사회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내가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친절한 얼굴로 내게 다가온 한 사람으로 인해 취업 비자 문제로 6개월 뒤에 혹독한 어려움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한 사람의 농간으로

홍콩 입경사무처(Immigration Department)의 불법취업 문제를 조사하고 단속하는 "Investigation Division"에서 불법취업자로 하루에 6시간씩 이틀을 혹독하게 조사받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이 사건을 나중에 알게 되기 전까지는 어쨌든 홍콩 초기 정착 일정은 순탄했다. 홍콩한국국제학교에 첫 초빙교사 4명을 포함한 가족 15명이 홍콩에 도착했다.초등 1명과 중등 3명이다. 학교에서 근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는 집을 얻는 일, 홍콩의 워킹비자를 취득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한국인 행정실장이 주도하고 우리는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홍콩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같은 전세 제도가 없다. 그래서 월세를 얻을 때 2개월치의 보즘금과 1달치 월세, 총 3개월치를 계약 시에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 계약했던 방 2칸의 학교 인근 아파트는 1만 홍콩달러(당시 한화로 120만 원)였다. 따라서 3만 홍콩 달러를 내야 했다. 학교에서는 부임해 온 선생님들이 정착하도록 5만 달러의 정착금을 빌려 주고 매달 5 천불씩을 갚도록 했다.


일을 하려면 워킹비자가 있어야 하기에 서둘러 비자 신청을 했다. 제출 서류로 많은 증빙서류를 요구했다. 교사자격증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심지어 교생실습일지나 증명까지 요구했다. 행정실장의 말에 의하면 홍콩은 다른 나라보다 교사의 자격이 매우 엄격하다고 한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작성하고 워킹비자를 신청했다. 그래야 가족의 동반비자도 얻을 수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홍콩은 워킹 비자 없이 일할 경우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 홍콩에서는 「입경사무처 허가를 받지 않고 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이를 위반하면 강제추방(국외 퇴거)을 명령받거나 「벌금 HK$50,000과 징역 2년」에 처하고 고용주는 「벌금 HK$300,000과 징역 2년」에 처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 따라서 홍콩에서 취업하는 경우는 취업이 인정되는 사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다음으로 의료보험 문제다. 홍콩은 공공의료가 제공되지만 엄밀한 의미의 의료보험은 사보험뿐이다. 홍콩은 영국과 미국 방식의 혼합이라 볼 수 있다. 즉 국영 의료보험으로 운영되는 무료병원과 민간 의료보험만 적용되는 영리 병원이 공존한다. 동네에 있는 클리닉이나 대형 병원을 갈 경우 의사를 보는 것만으로 10만 원 이상이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 따라서 민간 의료보험 시장은 매우 종류가 많다. 글로벌 회사일수록 보장되는 범위가 크고 비싸다.


홍콩한국국제학교는 교사 한 사람에 한해서 민간의료보험을 들어주고 사용도 횟수가 정해져 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의료보험 문제가 가장 크다. 여행자 보험을 들거나 한국에서 준비해온 싱비약을 사용한다. 물론 일단 워킹비자를 받고 홍콩 거주자 신분을 얻게 되면 홍콩 공공병원을 매우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치과는 치과용 보험을 따로 들만큼 매우 비싸다. 아내가 사랑니 하나를 뽑는데 동네 치과를 이용했다. 발치와 처방전 비용이 20만 원 정도가 나왔다. 그래서 홍콩 거주민들의 상당수는 정부병원을 이용한다. 물론 대신 엄청난 대기줄이 있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음은 아들의 학교 문제였다. 중국에서 처음 면접을 볼 때 K교장은


“우리 홍콩 학교에 오면 아들이 한 캠퍼스 안에 있는 국제과정에 보낼 수 있어요. 캠브리지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괜찮은 학교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네 그럼 국제과정으로 보내보겠습니다.”

라고 했다. 학비도 50%는 감면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참 솔깃한 제안이었다. 홍콩에 도착하고 나니 K교장이 먼저 불렀다.


“아들 입학시켜야지?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나? 그래서 말인데 첫 해는 한국어 과정에 보내는 게 어때? 한 교실에 10명 남짓 되는 학생인데 한국인 교사 한 명, 원어민 교사 한 명이 함께 가르치는 좋은 환경이에요.”


“교장 선생님, 일단 국제과정에서 시작해 볼게요.”


“내 솔직히 말하지, 한국 학생 모집이 어려운데 한국에서 온 선생님 자녀마저 국제과정으로 가면 이곳 교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교장 선생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교민 홍보는 제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이미 국제과정으로 보낸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일단 1년은 다녀 보고 난 후에 옮기겠습니다.”


“음~, 자녀 교육은 부모의 선택이니···. 음~”


나는 교장실을 나오면서 K교장의 “음~” 소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처음에 K교장이 약속한 그대로 국제과정에 등록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학비였다. 초등과정의 학비는 매달 5,000 홍콩달러였다. 당시 환율로는 약 60만 원 정도였다. 집세 1만 불과 학비 5천 불 그리고 학교에서 대여해 준 대여비 5천 불을 빼면 홍콩에서의 삶이 얼마나 팍팍할지 예상이 됐다.


나는 한국 정부가 세운 다른 나라 한국국제학교 규정을 찾아봤다. 대부분 교직원 자녀 학비는 면제였고 일본에 몇 학교는 50% 감면이었다. 나는 다시 K교장을 찾아갔다.

“교장 선생님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홍콩 교민들에게 한국학교 입학을 독려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교사들을 선발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새로운 팀들이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홍콩에 와보니 집세와 교육비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 큽니다. 교직원 자녀의 학비 면제를 요청드립니다. 다른 국제학교의 사례도 교직원 자녀 학비 면제인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음~, 이렇게 하십시다. 다른 선생님의 자녀들은 한국어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선생님 자녀도 한국어과정으로 옮기는 것으로 합시다. 그러면 내가 이사회에 적극적으로 학비 면제를 건의해보겠습니다.”


“네,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처음 말씀 드렸던 대로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저는 그대로 국제과정에 등록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나는 교장실을 나왔다. 국제과정에 아들을 등록시킨 2주 뒤에 한인 행정실장이 나를 찾아왔다. 봉투 하나를 건네주면서


“하~, 우리 후배님 고집 엄청 세내, 여기 아드님 학비 5천 불 환불입니다. 이사회에서 교원 자녀 학비를 면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홍콩에 온 교사 4인 가족 10명의 홍콩 초기 정착의 기본적인 세팅을 모두 끝냈다. 홍콩 거주증이 나온 후에 우리는 모두 마카오로 비자 여행을 갔다. 홍콩 입국 체재 기간은 3개월이기 때문에 3개 월이 임박해지면 다른 나라에 한 번 나갔다 와야 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마카오였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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