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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가속도

흘러가는 모든 것에 휩쓸리지 않고, 그 흐름을 타면서 즐길 수 있길.

by 문나인

인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벌써 겨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속도로 나는 살아간다.


삶이란 살면 살수록 무시무시하게 입체적이라서, 삶을 정의하는, 인생을 설명하는 그 어떤 철학적인 말들도 내 것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살아가며 내 몸에 부딪히고 머리에 남는 것들이 모여서 결국 인생은 사라질 때 완성된다. 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인생은 죽어서야 막을 내리는 것이다.

그전까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투정 부려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기승전결을 완성해 가는 여정의 중간쯤, 혹은 중간보다 조금 앞, 조금 뒤. 그 어디쯤.


사실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작일 수도, 이제 시작이다 생각했던 것이 끝이었음을, 우리는 죽기 전까지 알지 못한다. 한 생명체의 일생을 책으로 만들면 그것의 결말은 결국 책의 완성 이후에야 볼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말은 인생의 파노라마가 어떤 색, 향내음, 맛인지 결정짓게 한다. 결국 그래서 그 책은 세드엔딩이냐, 해피엔딩이냐로 분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은 역경을 헤치고 겨우 정상에 다다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좌절하고 만다. 만약 여기서 책이 끝난다면 지금까지 딛고 오른 역경이 원망스럽게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알아차린 것이 기승전결 중에 기 또는 승이었고, 전을 지나서 마지막에는 결국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면 반대로 지금까지 딛고 오른 것들이 위대하게 느껴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 이치를 투과한다. 정의하기 나름, 부르기 나름, 단정 짓기 나름, 해석하기 나름이란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인생 가속도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이론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이과적인 사람이 등장하여 왜 인간의 인생은 가속도가 붙는지 설명하겠다며 온갖 과학적인 이론들을 들이밀어도 여전히 정의하기 나름, 부르기 나름, 단정 짓기 나름,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것들을 믿을지 말지조차 선택권은 아직 죽음을 맞지 않은 모든 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록 이것이 우스꽝스럽더라도, 정의할 수 없더라도 마음속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왠지 공감이 가. 보기만 해도 뭉클해져. 같이 말이다.


인생은 허무맹랑하게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점점 빨라진 것이다. 마치 가속도가 붙듯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너무 쉽게 주변 환경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진 것은 매번 인식하지 못한다. 애당초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들을 모두 처리하기엔 인간이 그토록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두 하나하나 신경 써보자니 한 시간 만에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인생이 점점 빨라졌다는 사실조차, 가장 빠른 순간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것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싶다고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자 한다면 쥐고 있던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빠르게 지나간다는 건 결국 그만큼 살아가는 것을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일 테다.


흘러가는 모든 것에 휩쓸리지 않고, 그 흐름을 타면서 즐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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