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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위바위보, 꼬리잡기, 눈치게임

by 문나인

얼음!

상처 받은 내가 말했다.

지쳐버린 내가 얼어버렸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계절들과 사람들. 눈동자만이 데구르르 굴렀다.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영영 이대로 냉동인간으로 수억만년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굴리던 눈동자도 이내 멈춰버렸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새카만 어느 공간이 나를 가득 채웠다.

땡!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건드렸다. 나는 그제서야 눈앞을 확인했다.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다시 외쳤다.

땡땡땡땡땡

잊고 있던 따뜻한 온기가 간만에 피부에 닿아 온몸으로 퍼진다. 그 순수한 호의에 나는 무심결에 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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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를 돌아보니 모두 일사분란하게 멈춘다. 멈추는 순간 모두가 다급하게 멈췄다.

나도 술래의 등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리다가 아슬아슬하게 멈춰섰다.

그때 눈앞에 누군가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술래도 그 사람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술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사람을 향해 있었다.

다시 한 번 술래는 뒤를 돌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은 단 한 사람만을 주시했다.

처음부터 그 사람이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아니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구나, 정도였다.

그 자세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일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발레의 기본자세였음을 이제 와서 깨닫는다.

제 1포지션, 5포지션, 아라베스크, 를르베, 바트망 데벨로페.

점점 어려워지는 그 동작들을 하나하나 수행해나간다.

그리고 다시금 확신한다. 이 게임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가 우승자인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멈춰선 저 사람을 보며 깨닫는다.

아름다운 포즈를 연마해 모두가 보는 순간에 제대로 보일 수 있는 저 기개.

그렇게 아름다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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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확률을 계산해본다. 무엇을 내는 게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을까. 용량도 작은 머리를 애써 굴려본다.

그러다 번뜩 비상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가위바위보는 원래 안 내면 지는 거다. 상대가 안 내게 한다면 내가 무엇을 내든 이길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아무것도 내지 않도록 할지 고민해본다.

왜 이 가위바위보를 하는지 생각해본다. 원래 사탕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 것이다.

사탕 전부 너 줄게. 그러니까 가위바위보 할 때 아무것도 내지마!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상대는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이겼다!

하지만 사탕은 모두 상대의 것이다. 상대는 모든 사탕을 들고 자리를 뜬다.

난 이긴 건가? 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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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잡기


꼬리가 잡혔다. 나는 짧아졌다. 이 세계에서 그건 내 목숨을 하나 잃었다고 보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꼬리가 잡혔다. 그렇게 나는 다시 목숨 하나를 잃었다.

차라리 내가 도마뱀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꿈틀거리는 내 꼬리를 누군가 뜯어가도 그렇게 심장이 콩닥거리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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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게임


눈치게임 1!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다음 사람은 반드시 두 명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심한 나는 마지막에 남게 될테니 말이다.

2!

하지만 역시나 다음도 한 사람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럴수가.

나는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줄곧 모른 척 해왔으나 이제는 누군가 그걸 발견한다면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3!

그렇게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신경 쓰는 사이 단 둘만이 남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인생에서 손꼽는 긴장감이 지금 이곳에 찌릿찌릿 흐른다. 지금인가? 지금 일어날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상대가 4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건 나다. 게임 이름대로 눈치를 가장 많이 본 건 난데, 나는 왜 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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