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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그랬다면 나도, 나도...

by 문나인

세상에 억울할 일도 많았다. 들꽃으로 태어나서,


수많은 꽃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수수하고, 허리 숙여 겨우 찾아봐야 보일 정도로 작디작은 꽃.

차마 꽃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냥 풀은 아닌지 내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다.

태어날 때부터 가만히 있어도 별로 힘들지 않고, 뜨거운 태양에 쉽게 마르지도, 차가운 바람에 쉽게 흩날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대로.


하지만 억울해.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때론 무거워서 휘기도 하고, 사람들에 밟혀 접히기도 하고, 줄기가 터져서 진액이 흘러나오기도 하는데.

집에서 키워지는 화려하고 예쁜 꽃들은, 한 잎 한 잎 물 적신 손수건에 먼지가 닦이고, 고르게 분사되는 분무기 물을 먹고 자라고, 좋은 흙에 건강한 영양제까지 한 몸에 받으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슬슬 잘나지 않은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 하나 특출 난 것 없는 내가 미워 보인다.

그러게 보기에 예쁘기라도 했으면, 자라나는 잎들이 향이 좋은 허브였다면, 팔다리 끝에 열매들이 매달리기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나도, 나도...


나도 무언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벼가 익으며 고개를 숙이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며 고개도 함께 늘어졌다. 기어코 꽃잎이 바닥의 흙을 간지럽힐 때까지.


간혹 고개를 들면 보이는 따스한 가족들이 눈에 밟히고 자꾸만 아른거려서 비도 내리지 않는데 눈물을 흘리고만 싶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도 쓰러지는 몸을 일으켜 세워줄 부드러운 가족이 있었다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꼭 안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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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왔다. 따뜻한 햇살을 입안 가득 머금을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저항 없이 몸을 좌우로 뉘어본다. 주변에 있던 나와 같은 들꽃들도 모두 한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런 노래도 들려오지 않지만 바람소리가 멜로디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부드럽다.

내쪽으로 기울여온 다른 들꽃에 몸이 쓰다듬어진다. 내 몸이 또 다른 들꽃의 줄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들꽃이라고 엄마가 없으리란 법이 있나. 살아있는 생명체에 어미 없는 것은 없는데.

야생화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재배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로운 법이 있나.

곱게 자라지 않았다고 해서 비웃음 당할 이유가 있는 생명체란 있나.


서로의 어미가, 서로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들꽃이란 존재가 얼마나 특별하지.

혼자 이렇게 단단히 오래 세상에 머물을 수 있는 들꽃이란 정녕 사랑스럽지.

곱지 않은 투박한 날 것의 그것이 도대체가 겨우내 세련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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