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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거림

솜사탕, 찰나, 돼지저금통, 비눗방울

by 문나인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었다.

환하게 웃는다는 말의 뜻을 온전히 흡수한 때였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하늘에 흐릿하게 떠 있는 별보다, 희미하게 멀어져 가는 달보다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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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


몽글몽글한 솜사탕을 손에 쥐면

체온에 녹아내려 끈적해진다.

끈적해진 제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자니 인상이 찌푸려진다.

닿으면 사라지는구나.

너무 가벼워서 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새에 녹아 없어져 버리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추운 겨울, 엄마를 졸라 겨우 얻어낸 솜사탕, 이번에는 꼭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방안에 그것을 놓아두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솜사탕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다.

뚝뚝 떨어지는 색소 덩어리의 물줄기들.

내 손에 쥐어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사라져 버렸구나.

닿지 않으면 닿지도 못하고 사라지는구나.

어차피 사라지는 거라면 손이라도 닿아볼걸.

그 부드럽던 감촉이 닿은 적도 없는 손에서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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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가을. 참으로 찰나도다.

솜사탕. 참으로 찰나도다.

잠에 들었다 깨어났다. 참으로 찰나도다.

태어났다 죽었다. 참으로 찰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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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저금통


부모님이 주신 현금을 고이고이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방으로 들어오면

작고 기다란 구멍에 종이쪼가리를 구겨 넣는다.

돼지의 등에 뚫린 그 작은 구멍 속으로 무게 있는 쇳덩이도, 가볍디 가벼운 종이뭉텅이도 비집고 들어간다.

자고 일어나서 다음날, 한 달이 지나서 다시 용돈 받는 날, 세배하고 받은 세뱃돈, 장기자랑 값.

하나씩 차곡차곡 티끌을 모았다.

어느 날 돼지 코를 돌려 열어보니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엄마한테 여기로 넣은 게 전부 사라진 거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어제 먹은 아이스크림 오백 원. 오늘 네 손에 들린 초코막대과자 천 원.

차곡차곡 먹어치운 티끌들.

모으는 동시에 먹어치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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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공기 중에 피어난 동그란 무언가.

투명한 듯 표면에 떠오른 무지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다 맞은편에 있던 사람이 그것에 비춘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람의 얼굴이 볼록해진다.

푸핫, 하고 웃는다.

비눗방울이 어린이만 즐거운 게 아니구나.

오래간만에 웃은 이유는 어린 시절 즐겨하던 비눗방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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