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쉬다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어쩌면 사랑에도 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로만 남아서 서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 주변을 둘러볼 필요 말이다. 우리는 그걸 몰랐다. 서로만 행복하면 될 줄 알았고 남의 시선 또한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도 당시에는 행복했고, 계속해서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쉬고 싶어 했다. 그런 시간을 헤어짐의 연장선이라고만 생각해 애써 부정했다.


가끔 연인만 바라보지 말고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머릿속은 이중적인 생각으로 발악하기 마련이었고 실행으로 어떤 걸 옮겨야 할지 고민투성이였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서로 같이 있는 것이 쉼 자체가 아니냐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다. 설렘은 익숙함으로 번져가고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은 재정의가 필요해지게 된다.


친구들하고 어울려도 우리는 서로 허락을 받아야 했다. 둘 중 하나가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야 했고 술과 담배도 전부 통제받았다.


갑갑했다. 연인 관계에서 서로를 통제할수록 즉, 이기주의로 넘어가는 그 선이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원했고 우선의 순서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없어지고 수업 시간만 빽빽이 늘어간 것처럼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사랑은 지루해지고 꽃은 시들고 감정은 메말라간다.


흔히 권태기가 오는 시기였다. 그래도 우리는 썩은 밧줄을 잡으며 참았다. 언젠가는 끊어질 밧줄이라는 걸 알았지만 육 년 정도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그 줄을 먼저 자른 것은 내가 아닌 여자 친구였다. 그녀가 먼저 선고를 내렸고 나는 그 선고에 따랐다. 처음에는 공허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이에 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없었기에 서로 양보하지 않았던 그 행동이 축적되었기에 연인이라는 관계의 유지는 일의 연장선과도 같았다.


그리고 헤어진 지 한 달 정도가 흘렀을 때 느꼈다. 나도 숨을 쉴 수 있구나 그동안 쉬었던 숨은 연기가 자욱한 방 안이었구나. 이제 환기를 시작했구나 말이다.


헤어질 당시 그녀의 말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에는 잊어보려 했지만, 이제는 무덤덤하다.


“나 이제 지쳤어.”


지쳤다는 표현은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질렸다, 힘들다, 헤어지자, 그 외에도 많다. 지쳤다는 말은 직설적인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그녀도 쉼이 필요하다는 걸 목구멍에서 꾸역꾸역 참다가 올라왔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은 없었다. 사실 오래된 연인이었기에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서로에게 뜨거운 감정보다 차가운 감정이 느껴질 때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런 것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끝이라는 선택을 했다.


한편으로는 끝이라는 선택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기도 하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그녀에게 제한받는 것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쉬는 시간은 나를 재정비하게 했다.


사람마다 재정비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찾고 싶은 걸 찾고 일상생활에서 그녀에게 간섭받지 않는 것이었다.


썩은 동아줄을 그녀가 끊어주었을 때 떨어진 곳은 우울하고 공허한 세상이 아닌 여러 선택의 갈림길이 놓여 있던 것이었다.


우리의 오래 교제한 시간 선을 년으로 정리하자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일 년이 지날 때는 좋았다. 이 년이 지날 때도 좋았다. 삼 년이 지날 때 의문을 느꼈다. 사 년이 지날 때는 쉼이 필요했다. 오 년이 지나고 우리는 쉼을 찾았다.


쉼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 독립적인 쉼은 무조건 필요하다. 남을 위해 사는 시간만 투자하지 말고 나를 바라보는 쉼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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