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증명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사랑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계단이다. 계단은 올라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한다. 증명도 그렇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다. 같이 있는 것, 사소한 것, 말 한마디가 모두 증명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첫 시작은 나쁘게 시작하지 않는다. 좋게만 시작한다. 이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이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주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명은 어려워진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에 달고 살며 그것은 칼날처럼 무뎌진다. 무뎌진 말에는 무뎌진 감정이 따르고 그것은 원래 백을 채워준 증명이 아닌 반도 미치지 못하는 증명이 된다.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첫 시작은 가벼운 신체 접촉만으로도 짜릿했다. 서로 첫 연애이기에 새로웠고 좋았다. 서운한 게 있어도 티 내지 않았으며 사랑이라는 타이틀로 모든 것을 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변해버렸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증명해도 의심이 따르고 그 의심에는 불신이 따르고 그 불신에는 처참하게 깨져버린 사랑만이 남는다.


깨진 사랑도 과연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할지는 모르지만 불완전하다는 건 확실하다. 깨진 사랑은 처음에 이어 붙이려고 노력한다. 더욱 확고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들고 억지로 이어 붙인다. 그러고서는 하는 생각이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하게 굳는다고 한다.


그 한 번은 어느새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된다. 서로가 지치기 마련이고 이제는 증명해도 그러니까 자세히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해도 사소한 배려도 모두 일상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기에 감흥이 떨어진다.


이걸 해결하고자 한 선택은 도피다. 여자 친구는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녀만 해결하고 나는 술독에 빠져 이 주일을 보냈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해주지 못한 탓이라고 후회했다. 그래서 그녀를 잡으려고도 했지만, 사랑한다는 증명의 말이 나오지 못했다. 매일 술을 먹으니, 장이 멈춰버려 식은땀이 날 정도의 복통을 겪었다. 그녀의 SNS에 자주 들어가고 꿈을 꾸고 망상도 했다. 돌아오는 건 처참함 밖에 없었다.


그래서 증명을 포기했다. 이제는 완전히 놓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 시점은 두 달 정도가 흐를 때였다. 신기한 게 증명도 무뎌지지만 증명하지 않는 상태도 무뎌진다는 점이었다. 그녀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도 듣고 싶었는데 이제는 마치 몇 년 전의 일처럼 까마득했다.


증명의 회피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게 편해질 줄은 몰랐는데 바뀌었다. 육 년간 나는 무엇을 위해 증명했나 싶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그런 생각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힘든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녀에게 쏟아부은 내 육 년의 시간이 아까웠다. 매일 증명해야 하는 삶이 피곤했고 부담됐다. 우리는 끊어지길 원하는 밧줄처럼 얇아지고 있었다. 그 얇은 밧줄은 작은 손길 하나에도 끊어졌다. 그걸 실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야 하는 그녀였다.


앞으로 그녀의 삶이 어쩔지는 모른다. 대충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가 사랑스럽고 없으면 죽을 것 같고 의지하고 든든할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무게감이 가벼워지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 후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연애가 그렇다. 마지막이 결혼이든 헤어짐이든 언제나 끝이 존재한다. 그 끝이 새로운 증명의 시작일 수도 아니면 포기일 수도 있다. 한쪽이 좋거나 나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선택하든 잠깐 후회하거나 잠깐 좋을 수 있는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포기를 선택했고 마음의 짐을 놓기로 했다. 이제는 놓아주어야 했다. 순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첫 번째로 제대로 된 증명을 해주려고 했다. 두 번째로는 증명을 포기했다. 세 번째로는 이제 놓아주어야 했다.


그런 사랑과 이별을 겪고 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어떨 때는 그리움 또 어떨 때는 편안함이 뒤죽박죽 섞였다. 하나로 쭉 이어지는 일관된 감정은 없었다.


사랑 그리고 증명 둘은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지긋지긋하면서도 끝없이 갈구 되는 마치 갈증과 허기 같은 일차원적인 욕구와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 양날의 검처럼, 독이 든 성배처럼 참으로 지독하고 악랄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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