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회색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우리의 연애는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아니었다. 행복이 불행을 가릴 때도 있었고 불행히 행복을 가릴 때도 있었다.


하얀색이 검은색을 덮을 때도 검은색이 하얀색을 덮을 때도 있었다. 순서만 다를 뿐 회색이었다.


즉, 우리의 연애는 언제나 거무튀튀했다. 깨끗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얼룩져있고 번져있었다.


같이 행복할 때는 한없이 들떠있었다. 그러나 불행할 때는 한없이 추락했다. 즉, 우리 둘은 서로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렇기에 하얗게 변할 때쯤 검게 변했고 점점 그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감정을 위로받으려고 할 때마다 같은 심정이어서 서로 비참해지기만 했다.


행복을 비교했고 불행을 비교했다. 둘 다 밀려나기 싫어했고 그렇게 순위를 매겼다.


힘들었다. 매번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로 다투어야 하는 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다. 아니, 참았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그녀가 더 불행하고 더 행복해야 했다.


그렇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술을 진탕 먹고 폭발해 버렸다. 그녀에게 물었다.


“넌 내가 뭐로 보여?”


돌아오는 대답은 귀찮음, 한심함이 묻어나 있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자.”


그리고 통화는 끊어졌다. 이게 연애인가 싶었다. 그래서 다시 같이 물들기로 했다.


이제 양보는 없었다. 이기적으로 내 감정을 더 앞세웠다. 그랬더니 우리는 빠르게 지쳐갔다.


배려가 없어지고 서로에 관한 관심보다 자기중심적으로 얘기하며 만나는 횟수도 적어졌다.


권태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감정의 공유를 멈추고 육체적인 관계만 남는 순간 서로 섹스 파트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관계를 끝낼 때가 다가왔다. 회색의 도화지가 없어졌다. 그녀는 하얀색 도화지를 찾아갔지만 나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곳에는 물감과 붓만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해주지 못해서 떠났다고 생각했다. 죄책감도 가지고 미련함도 많이 남았다. 물감과 붓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나뒹굴었다.


시간이 지나자, 내가 왜 화방에만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꼭 도화지에 색칠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단 두 가지 색만 존재하는 화방에서 나왔다. 이제 깨달았다. 꼭 그 두 색만 쓸 필요는 없다는 걸.


세상에는 다양한 색상이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불행과 행복만이 나뉘지 않았다.


혼자여도 여러 색깔을 볼 수 있었다. 우울할 때는 푸른색 화를 낼 때는 빨간색 그저 그럴 때는 노란색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연애할 때 회색을 기준으로 둘이 나뉜 것은 강박관념이 존재해서 그런가 보다.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행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는 불행이 주된 원인이었다.


즉, 행복이 불행의 원인이 된 셈이다. 제일 구분하기 쉬운 색 두 가지의 특이점은 무조건 반대쪽에 머문다는 것이다. 한쪽을 쫓아가면 다른 한쪽을 버려야 한다.


연애는 하얀색도 검은색도 회색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 가지 색깔로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때로는 다양한 색들을 섞어주어야 사람 같다.


불행과 행복만 존재하는 연애는 언젠가 회색으로 변한다. 무엇을 해도 이상하고 부담스럽고 재미있지 않고 쉽게 흥미가 떨어진다.


그것을 인지하고 권태기라고 느끼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되돌릴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희박하며 다시 회색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게 빠르냐 느리냐 그 차이이다.


우리의 육 년은 세 가지 색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 가슴에 아린다. 초반은 하얀색 중반은 검은색 끝물에는 회색.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행복에서 불행으로 불행에서 공허로 이전했다고 볼 수 있다.


분명 이런 감정들 사이에서 경험해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빠진 것 같았다.


그 빠진 것들은 기계의 나사 역할이었다. 있으면 모르지만 없으면 알게 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극으로 치달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걸 과연 연애 중 느끼는 감정이라고 표현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같이 한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옛날이 좋았다며 추억을 상기하며 과거에 연연한 사이가 될 만큼 틀어졌나 보다.


어중간한 회색, 질려버린 회색, 아무것도 아닌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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