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정오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야간에 일하기에 원래대로라면 정오를 볼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잠을 자야 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런데 내겐 정오가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그녀는 정오에 점심을 먹고 나에게 전화를 건다. 최대한 정신을 차리면서 전화를 이어 나가야 했다. 졸림을 참고 그녀의 말에 공감을 해주며 잠을 자기 전 불쾌한 라디오를 들어야 했다.


까딱해서 졸기라도 하면 그녀는 언제나 맹공을 퍼부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줄 몰랐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은 본능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졸았으며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대답해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 까먹기 일쑤였다.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왜 이렇게 통화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평상시와 똑같이 전화하던 날 그녀가 나에게 회사 생활에 관한 부적응을 얘기했다. 여태까지의 불만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 알았지만 부적응까지는 알지 못했다.


문제는 그 부적응을 나에게 푸는 것이었다. 식사하고 남는 삼십 분 동안 그녀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업무는 더더욱 하기 싫어했다.


그래서 도피처로 통화를 선택한 것이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닌 다른 싫은 이유가 있어서 말이다. 실망감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과거를 곱씹을수록 여태까지 그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후에 내가 그녀에게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전화를 줄이기 시작했다. 정오에 그녀에게 제일 많이 하는 연락은 이제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닌 피곤하다는 메신저 하나였다.


그 메신저조차도 보내지 못할 만큼 일이 많아 피곤하게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침대에 잠시 누웠다가 씻는다는 걸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난 시간은 오후 한 시였다. 그런데 아무 연락이 와 있지 않았다. 독촉도 짜증도 없었다.


나는 그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피곤해서 잠이 들었더라고만 했다.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우려도 걱정도 아니었다.


“괜히 화낼 것 같아서 연락 안 했어.”


이미 우리 사이는 틀어져 있었는지 그 말이 거슬렸다. 그래서 무관심하게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나 피곤해서 좀 더 잘 게.”


느낄 수 있었다. 애정은 식은 지 오래고 친구보다도 못한 사이로 퇴보했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헤어진다는 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상황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제 정오가 되면 서로 전화를 선뜻하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나의 피곤함을 드디어 알아주고 배려해 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마음을 정리하는 순서였다.


다음날 작업할 게 있어서 카페를 들렀다. 정오가 되자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주말이었기에 조금 늦잠을 잤나 싶었다.


약간의 잠긴 목소리 그리고 머뭇거리는 말투 중간마다 느려지는 속도가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육 년 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려 했다.


토요일 정오에 그녀는 이별을 고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고 연신 사과한 후 전화를 끊었다.


상황 파악이 잘되지 않았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육 년이라는 시간 덧없기도 했다. 그 잠깐의 순간만큼은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멍한 상태였다.


오 분이 지나고 눈물이 흘렀다. 프랜차이즈 카페였기에 사람들이 꽤 있었음에도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남들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무언가에 잠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옷소매로 계속해서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몰랐다. 앞에는 통유리창이 있었다. 그 너머로 비치는 풍경이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이 가까스로 멈추었을 때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절반 이상 남은 커피를 반납하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담배를 입에 물고 연이어 피웠다. 거의 열 가치를 연속으로 피웠다. 입이 바싹 마르고 역겨운 냄새가 몸에 달라붙었다.


담뱃갑을 열고 아무것도 손에 쥐어지지 않자 다 피웠다는 걸 알았다. 담배를 사러 가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머물러서 라이터를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라이터의 가스마저 동나서 불이 올라오지 않을 때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 삼십 분 지독한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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