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순서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단계를 건너뛰고 계단을 세 칸씩 움직였다. 느린 것 하나 없었고 빠르기만 했다. 순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결과만을 바라봤다.


그게 우리 사이에 균열이 일어난 원인이다. 서로가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않고 갑작스러운 만남은 어긋나버린 순서였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었다. 알아가고 만나는 것이 아닌 일단 저질렀으니 만나고 나서 알아가기로 말이다. 결과를 먼저 도출하고 과정을 찾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그렇기에 충돌도 많았고 다툼도 잦아졌다. 그때는 이런 게 더욱 돈독해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우리의 결과가 틀린 건 아닐 거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정의 중요성을 느꼈다. 주변의 대학 동기들이 헤어지면서 입을 모아 하나 같이 말했다.


“야. 너네는 안 헤어지냐?”


당연히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첫 연애인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점점 꺾여만 갔다. 그녀의 마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녀도 점점 고개를 수그리며 꺾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연애는 원래 그런 거다. 서로 맞춰가는 거다. 연애 상담을 할 때마다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무엇하나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룸메이트가 말했다.


“그렇게 연애할 거면 난 차라리 안 한다.”


그의 생각은 어떤 걸까. 그런 연애라는 것은 무엇일까. 남에게 보이는 것이 비참할 정도면 우리의 사랑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다.


사랑하기 전에 친구였어야 했다. 익숙함이 빨리 오는 게 아니라 설렘이 오래가야 했다. 우리는 이 둘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긋난 순서는 다시 돼 맞춰지지 않는다. 지금의 상태에서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근데 그 최선을 다하려고 할 때마다 후회가 든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과거를 회상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더 집착한다. 특히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게 여기게 된다. 문장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됐을 텐데.’


과정이 앞 순서로 나오고 그 뒤에 결과가 나온다. 이건 모든 것을 대입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온다. 특히 예측하기 힘든 주관식으로 열려있는 인간관계에서 도드라진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심해진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매우 심하다. 다툼하고 나면 처음에는 남 탓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본다. 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늦었다는 것을 알고 바로잡으려면 이미 감정은 상할 때로 다 상했고 깊게 베인 상처만이 남는다. 그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로 남게 되고 지워지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순서를 지킨 커플도 저런 경우가 많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는 당연히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예쁜 포장지 안에 잡동사니들이 얽혀 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포장지를 뜯지 않은 채로 보관만 했다. 언제쯤 개봉해야 할지 둘 다 몰랐다. 그리고 그 포장지를 뜯는다는 건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간중간마다 포장지의 리본을 풀려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를 극구 말리며 다시 리본을 묶었다.


그런데 그 리본이 풀리는 날이 왔다. 아니 포장지까지 전부 벗겨버리는 날이 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처럼 서로 바쁜 일정으로 인해 잘 만나지 못했다. 그 사이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있었고 우리의 연애와는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간단한 내기로 음료수를 같이 마시는 것에 그쳤다. 근데 그 내기는 점점 판이 커지더니 선물로 변해버렸다. 알아가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나에게는 짜증만을 냈다.


그때 알아야 했는데. 눈치가 없어서 알지 못했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둘 다 예쁜 포장지가 있는 선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점은 그는 포장지를 뜯어 안의 내용물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포장지를 벗긴 선물을 보자 나에게 이별 통보했다. 육 년 동안 우리는 서로 알아가긴 한 걸까. 순서를 지키지 못해 이 사달이 났을까. 내가 다음 연애 때는 순서를 잘 지킬 수 있을까. 결괏값을 먼저 내고 계산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다른 게 아닌 틀린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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