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높은 고층 빌딩, 낮은 구식 빌라, 화려한 회사 우리는 그 건물 사이를 다 지나다녔다. 나중에는 저기에 취업하고 싶다든지 어디에 살고 싶다는지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헤어진 후에 어디를 갈 때마다 모든 건물이 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같이 나눈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 별을 빨리 없애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뜨지 않는 이상 그녀의 세계에 갇혀 살아야 했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원래 사랑하던 사람의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특히 그녀와 건물 사이를 걷는 동안에 말이다.
제일 깊게 기억에 남는 건물은 대학교 때 자취하며 살았던 5층짜리 빌라 건물이다. 그녀는 방학만 되면 거의 그곳에서 나와 같이 동거했다.
졸업 후 현재 자취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녀의 향수가 느껴진다. 예전에 혼자 살 때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더듬은 기억 속에는 꼭 그녀가 존재했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가 짜증이 났다. 마지막으로는 거슬렸다. 고통은 힘듦을 주었고 짜증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거슬림은 그것이 추억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리면 많은 건물이 보인다. 우리는 거기 있는 건물 중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가 봤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해도 과연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추억을 기억으로 덮어야 하는데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사랑의 변환 성은 주거지와도 같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말이다. 즉, 그녀의 입장은 구식 아파트에서 신식 아파트로 이사한 마음일 것이다.
빨리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짐이 점점 빠지면서 그 집에 관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이사를 하면 기분이 좋다가 점점 전의 집과 비교하게 된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말이다. 그 비교는 은근히 거슬리게 한다. 나는 분명 새집이 좋은데 왜 자꾸 과거를 추억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온다.
건물은 그냥 세워져 있는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다. 그것이 쌓이고 나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는 추억이 된다. 그 추억이 좋고 싫음으로 나뉜다. 나의 경우 좋음에서 싫음으로 바뀐 경우다. 그녀와 이별을 기점으로 말이다. 아직도 그런 말을 듣고 싶을지 모른다.
“우리 저기로 가보자”
잠깐 시간을 죽이기 위해, 약속한 장소에서 만날 때, 예정된 데이트 코스로 갈 때 너는 그 말을 하곤 했다. 그곳에는 건물이 있었다. 과연 추억 속의 건물인가 아니면 건물 속의 추억인가 헷갈리기만 한다.
현재 나는 불행 속에서 살고 있다. 중간마다 행복한 소식이 있지만 어딜 가든 너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힘들다. 그 흔적은 무의식적으로도 박혀 있어 지워지지 않고 가끔가끔 생각난다. 가만히 있을 때도 기억나지만, 제일 힘든 것은 너와 같이 간 건물을 지나칠 때가 크다.
거대하고 큰 건물이 선사해 주는 압박감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가슴에 무언가가 맺힌다. 작고 아담한 건물은 신경을 건드려 슬픔을 유도한다.
너와 했던 모든 행동은 건물 안에서 시작됐고 밖에서는 그저 다른 건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그 발걸음의 끝은 다시 건물로 향했다.
너와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든 곳에 추억이 없었더라면 불행마저도 없었을 텐데. 왜 내게 큰 행복은 안겨주고 떠난 네가 원망스럽다.
그래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새로운 건물을 찾기 시작한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면 그곳으로 가자고 할 테니까 말이다. 다른 남자와 쌓은 추억의 건물에 나는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다.
익숙한 곳이 좋다. 새로운 것은 이제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와같이 새로운 것을 하기가 싫다. 가던 곳만 가고 싶고 먹던 것만 먹고 싶다. 그녀와는 거의 새로운 것을 대부분 했지만 헤어지면서 늘 하던 게 좋다.
똑같은 건물에서 똑같은 일상생활의 반복. 어쩌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지금이 훨씬 더 낫겠다. 자기합리화를 한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원래 다 그렇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이제 이 건물에서 하던 것을 계속해야 하겠다. 어디로 떠나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거나 그런 예외적인 부분을 빼면 여기 이 자리에 남아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