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야 비로소 길에서 멈춘다.
사람은 살면서 시련에 부딪히거나 위기가 찾아오면 비로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 우리는 미처 선택하지 못했던 길들을 발견한다.
내 길일 수도 있었던 길, 한때 내 길이었으나 포기한 길. 그 길들은 언제나 지금보다 나았을 것처럼 보인다.
회한은 그렇게 찾아온다. 저 길을 택했더라면 지금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저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걷지 않은 길을 아름답게 상상한다.
먼바다에는 물결이 보이지 않는다. - 연암 박지원
하지만 길은 원래 구불구불하다. 울퉁불퉁하기 일쑤다.
내가 걷지 않은 길이 평화로워 보이는 건 단지 내가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늘 고요하다. 그 길 위의 돌부리와 진흙, 가파른 언덕과 어두운 골짜기는 보이지 않는다.
꿈이 현실이 되는 곳,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 보자.” 이 말은 체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신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여주인공 미아는 남주인공 세바스찬이 운영하는 재즈 카페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무대 위 피아노 앞에 앉은 세바스찬의 시선이 객석의 미아와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이 함께했더라면 펼쳐졌을 또 다른 삶을 회상처럼 펼쳐놓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늙어가는 삶. 하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 미소 속에는 그리움도, 후회도 그러나 무엇보다 축복이 담겨 있다. 각자의 길 위에서 각자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이 건네는 서로를 향한 깊은 긍정. 그들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애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열심히 하며 살아온 삶을 긍정할 뿐이다.
미아는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열었다.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그 길을 갈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안다.
길을 걸어야 길이 보인다.
조선 시대 지리학자 신경준의 “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길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비로소 그 길의 의미를 만든다.
길 위에서 가야 할 곳을 놓치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할 곳을 잊지 않고 사는 삶은 길을 잃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길 위에 서 있다. 때로 그 길이 험하고, 때로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좋아하는 것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낼 것이다.
걷지 않은 길은 영원히 아름다운 가능성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걷고 있는 이 길, 지금 내 발밑의 이 길이야말로 내 삶의 진짜 의미다.
그러니 뒤돌아보지 말자. 아니, 미아와 세바스찬처럼 뒤돌아보되 후회하지는 말자.
그저 지금 이 길 위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자.
길은 걷는 사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