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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한강의 시

한강의 글과 마크 로스코 그림의 틈사이로도 같은 빛이 흐른다.

by Someday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한강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이 시는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되어 있다.



'내 작품에서 해야 할 일은 단지 침묵뿐이다.' - 마크 로스코

주황, 빨강, 노랑(Orange, Red, Yellow)

한강과 마크 로스코는 시공간을 달리 한 사람들이다.

한강은

67년의 시간과

서울과 뉴욕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친밀한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한강은

그의 예술세계와 맞닿았기 때문이다.


한강의 시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크 로스코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마크 로스크(1903. 09. 25 ~ 1970. 02. 25)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거대한 화폭에 단순한 사각형의 색면을 칠한 판화로 유명하다. 작품들은 대개 작품에 사용된 색상으로 명명되었고,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201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6백만 달러에 낙찰된 '주황, 빨강, 노랑(Orange, Red, Yellow)'이다.

로스코의 작품들은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은 사각형이 주 소재이다. 형태가 단순한 대신 거대한 화폭 위에 칠해진 색상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1958년 작품 '밤색 위의 검은색(Black on Maroon)'에서의 흐릿하고 우중충한 색상은 우울함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에서 비롯된 서구 사회의 불안감을 암시한다. 이렇듯 색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보는 이들에게 특정한 주제를 환기시킨다. 반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패턴에 임의적인 해석을 가미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 많다. - 출처: 나무위키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486


마크 로스코가 자신의 손목에 칼로 긋던 1970년 2월, 그는 늦겨울 뉴욕 묘지에 눕혀졌다.

그 무렵 한강은 따뜻한 엄마 뱃속에서 점 하나로 맺혀 있었고.

2월은 죽음과 생명 사이 틈이었다.

그의 그림 사이에 있는 틈처럼 한강의 언어들 사이에도 틈이 있다.

두 사람의 틈이 비슷해 보인다.

그 틈 사이로 죽음과 생명, 어둠과 빛이 있다.


마크 로스코의 주황, 빨강, 노랑은 석양 빛일까, 여명의 빛일까?

한강의 글 속에서, 지나간 이들의 고통과 고통을 기억하는 이들의 악몽 사이(틈)로도 빛이 흘렀다.

그 빛은 노을빛이기도 했고, 새벽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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