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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01. 2023

활자 멀미

버스에서 책 읽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어요.

친구가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둘째가, 다섯 살배기 아들과 동갑내기라, 그 용기에 먼저 박수를 보내주었다. 학사부터 시작해 전문 자격증 과정, 석사, 강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그녀의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혼자 하는 게 심심했는지, 같이 하자고 자꾸 꼬신다.


얼마 전, 친구가 클릭한 라이킷 문자가 갑자기 줄줄이 왔다. 박사과정 하면서 속독을 배웠나 싶었다. 글을 빨리 읽는구나 했더니, 자기가 다녀간 흔적만 남기는 중이라고 했다. 중간중간 건너뛴 건 뭐냐 했더니, 본인이 그랬냐고 되묻는다. 솔직히 이젠, 글이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하긴. 이젠 책만 봐도 멀미가 나겠다고 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 읽고 읽고 또 읽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강의도 틈틈이 하고, 따라가야 하는 박사과정 공부. 에너지가 고갈될 만도 했다.


논문을 내기 직전, 스트레스가 최대치로 상승한 학생들 중, 갑작스러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갑자기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피부 발진 증상이 나타나 약을 먹어 진정시켰었다. 마감 시간 직전까지도 고치고 또 고치며 글을 읽을 때 갑자기 멀미가 났다. 본인이 쓴 글이지만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었다. 교수님은, 이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티켓을 딴 것이라고 계속 공부할 것을 권유하셨다. 석사도 이런데, 박사는 못할 거 같다 했더니... 그럼, 너의 배움이 거기까지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셨던 그날이 문득 떠오른다. 친구 따라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시험 보듯이 체크하는 받아쓰기가 아님에도, 아이는 소리 나는 대로 써보라는 제안을 못 들은 척, 다른 곳으로 관심사를 돌린다. 아이는 자신이 b와 d 사운드를 헷갈려하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rabbit을 적어야 하는 상황을 피했다.


아이들은 글자를 거울 이미지로 받아들이는지 S 나 J를 반대방향으로 쓰기 일쑤고, b, d, p, q를 '당연히' 헷갈려한다. j와 i 도 혼동의 글자 단골손님들이다. 운전 연수 해주려다 이혼까지 갈 뻔했다는 얘기가 있듯이, 교장 선생님도 예전에 자기 아이 가르치다 속에서 천불이 났었다고 한다. 가까운 관계는 긴장하지 않아서일까, 내 생각대로 결과치가 안 나오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가르치는 사람은 너무 여러 번 설명해서 멀미가 날 것 같고 그래서 울화가 치밀어도, 순간 명상으로 우아함을 유지해 보자. 아이들이 틀려도 시도해 보는 용기를 키워주는 길이다. (가르쳤다고 배우는 게 아니라는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살았던 적이 있다. 효과 있다.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너무 길면, 다 내 맘 같지 않다고 하시더라도...)


그래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낫다. 아이와 한글 떼기를 6개월 동안 씨름하다가 일주일 한 번 방문 교사의 힘을 빌어 두 달 만에 졸업했다고 한다. 아이가 2학년 2학기였었다.


문득, 아이는 어쩌면 한글을 거의 다 떼어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다 된 밥에 뜸이 좀 들기를 기다리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반복의 멀미를 가르치는 사람이 다스릴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그 고단함을 모르진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먼저 편안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영어와 관련 없어 보이는 이야기로 돌아간다. 모두들 건강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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