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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04. 2023

아이 이름 어떻게 지으셨어요?

소원의 힘.

이십여 년 전 유치원으로 실습을 나갔을 때다. 역할 놀이 코너에 있는, 격자 나무로 만들어진 전화부스에 세 살 남자아이의 머리가 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선생님들이 머리를 빼내려고 용쓰는 동안, 아이는 'ㄱ' 자 상태로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도저히 빠지질 않아 결국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들어갈 수 있으면 나올 방법도 있으련만 소방대원도 고개를 흔들었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내야 하는 상황. 격자는 그리 크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 접근을 해도 아이의 목과 가까웠다. 보고 있는 어른들도 아슬아슬한데 아이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마주 앉아 작업하는 소방관 아저씨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Hello, my name is Liam."


순간 모두가 웃었다. 둘러서 있던 모든 어른들의 긴장을 풀게 만든 아이의 인사. 아직도 경쾌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여느 아이라면 벌써 울거나 보챌만한 상황이고, 시간이었다. 목으로 톱날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아이는 여유롭고 편안했다.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상황을 즐기며, 자기소개를 하다니. 순간적으로, 후에 아들을 낳는다면 저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공부하며 일하는 늦깎이 유학생으로 방 한 칸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었다. 준비가 되면, 그때 천천히 생각해 보자 했지만 삶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생각은 잊은 지 오래였고, 임신에 대한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사주에 딸이 하나 있는데 사이가 별로 좋지 않네'라고 할 때, 어차피 자식 생각 하지도 않고 있는데 사이가 좋고 말고 가 어딨겠나 하며 흘려 들었다.


조리원 첫날, 다들 식사하는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로 갑자기 소개가 되어 당황스러웠다.

내 몸이 임신 가능한 신체였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당시 아기 소식은 얼떨떨했었다. 사주에 딸이 있다더니, 딸 같은 아들이 되려나... 아이는 곱고 이뻤다.


이름을 지을 때, 후보 명단을 놓고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불러 보았다.

제 몸에 맞는 옷이 있듯이 이름도 그런가 보다. 아무리 사랑스럽게 불러봐도, 아이의 얼굴을 보면 매치가 되지 않는 이름이 툭 걸러져 나왔다. 까다로운 신랑도 같은 마음으로 선택한 이름.


"Hello, your name is Liam!"


출생신고에 영어 이름을 먼저 올렸다가, 중간 이름과 성이 너무 길어, 병원에서 이름 불릴 때 곤란을 겪었다. 자리도 모자라 그나마 잘려버린 영문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하는 간호사님들을 위해, 법원을 오가며 개명 신청을 했다. 한글 이름은 엄마 성을 따라 지었다. 짧고 임팩트 있는 한 글자 이름으로 했더니 이번엔 외자냐고 꼭 물어본다.


아무튼, 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순간적으로 빌었던 순수한 소원, 그 힘은 꽤나 강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망했는지조차도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인력으로만 되는 일도 아니었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도 농장에서 일 끝나고, 지나가는 말로 '오늘은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 하면 정말 저녁 메뉴에 스파게티가 나왔었다.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자,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 메뉴를 맞춰 보라고 하는 농담도 오갔었다. 이번엔 뭐가 먹고 싶냐며. 그냥 입맛 당기는 데로 빌었던 순수한 소망이었는데 우주는 듣고 있었단 말인가. 그저 우연의 일치였나.


살면서, 간절히 원했고 노력했어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많았다. 원한적도 없었던 일들을 겪을 때마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경멸했었다. 이루어지기는 개뿔.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란 말이 있다.

그러니 현재가 괴롭고 힘들어, 본인도 모르게,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당기지 않기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때가 되면. 소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날이 꼭 오기를 소원해 본다.

소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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