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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n 13. 2023

아는 집 아이의 목청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문 밖이 유난히 요란스럽다.

말소리, 우는 소리, 링거 스탠드 끄는 바퀴소리, 호흡기 치료 모터 소리, 아이들끼리 노는 소리.

며칠사이 초등학생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루한 시간, 아이들은 복도에서 게임을 하는지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가 낮에 잠깐 잠이 들려 할 때라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병원인데... 조금 심한 건 아닌 지... 말을 할까 하다가 아이와 같이 잠이 들었다.




병실 옆에 붙여 놓은 이름 중,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성과 이름이 흔치 않은,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의 동생.

그러고 보니, 멀리서 보고 비슷해서 긴가 민가 했던 그 분과 매치가 되면서 확신을 했다.

당시 세 살이었던 아기는 어느새 반에서 제일 큰 이학년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병실로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주셨다.

아들이 태어날 때 보고, 처음 보는 거라 이뻐라 해주셨다.


어른들의 말이 지루했던 아이는, 엄마를 불러, 하던 게임을 계속하자고 재촉했다.

가위 바위 보. 이긴 사람이 약속한 숫자만큼 걸음을 걷는 게임. 복도를 한 바퀴 먼저 도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날 입원하고 있던 터라, 오늘이 첫 게임은 아닐 텐데 이제야 그 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방에 있다가도, 문 앞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게임을 지켜봤다.


누나는 병실에 함께 있던 다른 초등학생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했다. 복도 이 끝에서 저 끝에서 하는 터라, 목소리들이 컸다. 아들은 옆에서 보다가 아는 누나라는 생각에 끼고 싶어 했다. 8살 9살 10살 이렇게 셋이 하던 게임에 조그마한 녀석이 밀고 들어오자, 누나는 동의를 먼저 구한다.


"재도 해도 돼?"


10살의 허락? 이 떨어지고, 아들은 함께 게임을 했다. 병원에 와서, 처음으로 어린 사람들과 하는 게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목청껏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Shhhhhh.....


이를 닦지 않겠다고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아이, 지친 엄마의 다그치는 소리, 이제 곧 불 끌 거라는 간호쌤의 소리, 아이는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느냐는 관심의 소리.


문을 닫고 병실 안에서만 들었다면, 낮에 느낀 불쾌함 만큼이나 소란했던 저녁.

아는 집 아이가 외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소리에, 다른 병실 아기들의 심기를 신경 쓰고 있었다.


알고 지내게 된다는 것.

좋은 점이 있는 만큼 적절한 밀당 또한 필요한 고난도 사회생활의 시작.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영역이지만...

그래도

아는 아이 목청에는,

달 빛 반대편 어둠보다, 휘영청 밝은 너그러움으로 반응했다.




무궁화 꽃을 끝까지 고구마 꽃이라 말하는 동생이 어리다고 느낀 초등생들은 다시 자기들의 영역을 구축했다.

덕분에, 무리에 끼지 않고 혼자 복도를 돌며 운동하던 한 살 터울의 누나를 만났다.

아마도, 무리를 벗어나 자연스레 이어진 발걸음은 자신의 에너지 파동과 비슷한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은,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끼거나 빠져야 하는 관계가 아니어서 노는 모습이 편해 보였다.

같은 날 입원한 아이가

이제야 눈에 띄다니.

진작에 알았다면, 아이 둘 모두 조금 덜 심심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긴,

인연이란 그런 거니까.

인생은 타이밍이니까.

지난 일에는 연연해하지 않는 걸로.


아들은 잠들기 전에 재미있었다고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감사히 간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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