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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Jul 18. 2024

불안해할 시간에 핫케이크를 구워!

내일의 불안과 오늘의 핫케이크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속의 불안이에 나는 깊이 공감...을 넘어서 감탄까지 할 지경이었다.

저거지! 저렇게 주체할 수 없이 머릿속을 휘젓는 거. 이걸 저렇게 표현한다고? 이럴 수가! 너무 멋져! 그렇다. 나는 자주 불안한 사람이다.        




  


불안,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도 말한다. 적당한 불안은 갑자기 닥쳐오는 변수와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적당하면 참 좋을 텐데... 딱히 대처할 방법을 찾지도 못할 거면서 무작정 불안해하는 것 얘기가 다르.     



이 SNS 어플 깔아주면 애가 폰 중독 되는 거 아냐?

이 중학교에 보내면 애가 어떻게 되는 거 아냐?

애들하고 부딪힐 일은 이제 더 많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사건사고 뉴스 보면서) 우리 애들도 저렇게 크면 어떻게 하지?

서울에서 살고 싶은데 계속 이 작은 곳에서 살다가 뭐가 잘 안 풀리는 건 아닐까?

나는 평생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문득문득 스치는 불안함. 어떻게 될 것 같은 마음. 거기다 가끔은 과거에 대한 후회까지 더해진다.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아무 의미 없는 후회와 상상들. 그나마 정신이 번쩍 들 때는 ‘진정해, 나 자신!’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호르몬 영향을 받거나 마음이 힘든 날엔, 안 좋고 안 좋은 장면만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오래 살던 동네에서 먼 지방으로 이사를 했을 무렵, 생각이 많았다.

서울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이러이러했다면 이사를 안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난생처음 부모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동네로 온 건데 내가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몇 년을 더 살게 될까.

그건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괜찮은 일일까.


의미 없는 과거 복기와 답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던 어느 날, 방학의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어제 만화에 나왔던 거! 괴물이 먹었던 핫케이크, 그거 먹고 싶다.”     


만화에 나왔던 거라면... 잭이 콩나무 타고 올라가서 만난 괴물이 먹던 거 말이지? 층층이 올려진 핫케이크에 네모난 버터 한 조각 놓여있고 시럽 줄줄 흐르는 먹음직스러운 핫케이크? 내적 갈등이 일었다. 속도 시끄러운데 뭔가를 만들기는 너무 귀찮잖아. 근데 또 방학 끝물에 폭신한 핫케이크 한 입 베어 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도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번거로운데 마침 집에 온갖 재료가 완벽하게 있는 건 운명인가?      


“해 먹자! 머리 아프다. 걱정한다고 뭐 달라지냐. 핫케이크는 구울 수 있으니. 해 먹으면 되지.”     


핫케이크 가루와 계란, 버터, 스프레이 생크림까지 모두 있으니 준비는 끝났다. 눈대중으로 대충 부었다가 망쳐버리면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기분이 될 것이 뻔하니, 포장지 뒷면 조리법 그대로 오차 없이 반죽을 만들었다. 실리콘 솔은 이럴 때 써야지 하며 팬에 기름도 얇게 펴 발랐다. 핫케이크가 프라이팬만큼 넓적한 건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한 국자 쏘옥 떠서 너무 크지 않은 동그라미 두 개를 만든다. 그때부턴 눈을 떼선 안 된다. 타는 건 찰나. 갈색빛을 띠면서도 노릇노릇하게, 언젠가 디저트 카페에서 봤던 모양 그대로 나오길 바라면서 약불에 인내를 담아 기다린다. 뽁, 뽁, 기포가 보일 땐 뒤집개로 살짝 들어 바닥면을 보고 충분히 익었나 눈치싸움을 하다가 조심스레 뒤집어야 한다. 그 후엔 팬이 이미 달궈져 있어 금방 타므로 오래 두어선 안 된다.

    

설렘과 긴장 속에 구워진 핫케이크를 한 장 한 장 민트색 접시 위로 옮겼다. 착, 착, 착. 신혼 때 분위기 있는 주말 브런치를 먹겠다며 핫케이크를 굽다가 다 눌어붙고 타버렸던 기억이 났다. 핫케이크 이거 은근히 어렵다(구워본 사람은 안다!). 여전히 쉽지 않아 집중했다. 약간씩 그을러 얼룩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깨나 노릇노릇 예쁘게 구워진 핫케이크를 한 장씩 접시에 쌓았다. 왠지 모를 으쓱함 같이 쌓였다. 나 오늘 좀 멋진 것 같아... 굽길 잘했다!


버터 한 조각에 살 좀 쪄라, 생크림 한 숟가락에 식욕 좀 돌아라, 시럽 한 바퀴에 심심함 좀 달래져라, 아이들 향한 염원 가득 담아 달달 곁들여주었다. 아이들은 어제 만화에서 본 거랑 똑같다고 신기한 듯이 말했다. 더 예쁘게 꾸며줄 블루베리와 딸기는 없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우린 이걸로도 충분했다.

따뜻하고, 달고, 폭신하다.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건 부드러운 핫케이크 때문일까, 아이들의 웃음 덕일까, 오늘의 할 일에 집중하고 근사하게 끝냈다는 뿌듯함 때문일까?   

       


얼마 전, 책 <우울할 땐 뇌 과학>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p.78) 또 하나의 좋은 해법은 현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걱정과 불안은 자신을 미래에 투사하는 일이므로 현재에 완전히 몰두하면 걱정과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된다. 그러니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자. 만약 실제로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처하고 그것이 표면 아래에서 부글거리는 불안일 뿐이라면 그 사실을 인지한 뒤 다음으로 넘어가자. 초점을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로 옮기자.    



이미 벌어진 일을 곱씹고 제대로 시작도 안 해본 타지 생활을 걱정만 하고 있느니, 뭐 하나라도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편이 나았다. 갑작스러운 이사, 예상 못한 역병, 부모의 생각대로 크지 않는 아이들... 어차피 인생은 변수 가득이고 그에 대한 대처법일일이 갖고 있않다. 안 보이는 것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눈앞의 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싶다. 조그만 성취를 모으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오늘의 브런치 연재 글을 올리는 것.

 50분의 운동이지만 내 몸에 확실하게 집중하는 것.

그렇게 적당한 하루하루를 착, 착, 착 쌓고 싶다. 그날 구웠던 포근한 핫케이크처럼. 요리 고수는 아니지만, 만화 속 핫케이크를 흉내 낼 정도는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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