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중에 걸, 걸, 타령하지 말고 지금 후회 없이 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근데 인생이 마음대로 되나. ~할 걸, ~갈 걸, ~하지 말걸. 여전히 걸 걸 타령을 하면서 산다.
이미 살아온 인생 속에서도 유독 후회하는 순간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거고 말이다.
20대 중반, 방송국에서 일했다. 스튜디오 녹화가 있는 날엔 언제나 우리 방 옆에 <최고의 요리비결> 녹화가 있었다.(이하 ‘최요비’) 나는 항상 그 방이 궁금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계란프라이랑 라면이 다였던 20대 시절이었지만, 집에서 종종 보던 최요비는 요리실력과 상관없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건물 복도에서 마주치는 한낱 옆방 막내작가인 나에게도 다정하고 젠틀하게 인사를 건네주던 박수홍 님 때문에 최요비가 재미있었다고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막간 상식: 지금은 광희가 최요비의 MC이지만 2010년대 초반엔 박수홍이 MC였다.)
나는 종종 최요비 팀에서 일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매여있지 않은(매여있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보호받지 못하단 뜻이기도 한) 막내작가로 사실 때에 맞게 어디로 이동하는 게 문제 될 건 없었다. PD들도 막내작가가 원하는 자리를 위해 애써주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용기가 없었다. 우리 PD님, 최요비 PD님한테 ‘최요비 팀 막내작가 빈자리 나면 제가 가고 싶어요! 저한테 꼭 연락 주세요! 면접도 잘 볼 수 있어요!’ 한마디 해놓는 거 어려운 일 아닌데 용기가 없었다. 말한다고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으므로 약간의 기회만을 위해 그냥 해놓을 수 있는 말이었는데. 괜히 가서 잘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어려울 수도 있고, 안 해본 형태의 것들이라 적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고... 아, 그냥 됐고 하던 거나 잘하자!라고 지레 겁먹고 결론 내렸던 2n살의 어느 시기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조금 후회가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살걸, 좀 더 열정적으로 좋아할걸, 걸... 걸...
그렇게 어영부영 세월은 흘렀고 나는 세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할 줄 아는 요리도 라면과 계란프라이에서 제법 가짓수가 늘었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변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은 것이 있었다. ‘최요비’다.
우리집 초등 남아들은 저녁 만화타임을 끝내면 꼭 최요비로 채널을 돌린다. 가지 같은 게 메인재료로 나오면 ‘으악 저거 맛없겠다’ 하고, 버터랑 마늘 범벅된 엄청난 닭요리가 나오면 부엌에 서 있는 바쁜 나를 마구마구 부른다. “엄마! 엄마! 저건 무조건 엄마가 만들어봐야 돼. 좀 봐봐!”
미혼의 내가 탐하던 프로를 내가 낳아 기른 초등학생들이 애청하고 있다니. 이걸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하면 오버일까? 참 새삼스럽다.(기왕이면 ‘탐하던’ 말고 ‘몸 담고 있던’이었다면 더 어마어마했겠지만 말이다.)
그 덕에 자연스러워진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내가 한 음식을 먹고 몹시 마음에 들었을 때 ‘완전 맛있어’ ‘엄마 식당 차려도 되겠어’ ‘이거 끝내준다’ 보다, ‘엄마, 최요비 나가도 되겠어’라는 말을 더 자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제육볶음을 했다. 순전히 내가 먹고 싶어서였다. ‘맛있는’ 제육볶음을 싱싱한 상추에 입안 가득 쌈 싸 먹고 싶었다. 사실 그전 주에 남편 회사 안에 있는 식당에서 다섯 식구가 제육볶음을 먹었다가 정말 개탄을 금치 못했던 일이 있었다.
“오빠. 양념 뭐가 아예 통째로 빠진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간장일까, 설탕일까. 모르겠어...”
우리 아버님이 맛없는 음식을 드시면 늘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라는 표현을 하시던데. 이 제육볶음을 위한 말이었네. 정말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잖아!
입을 정화시키고 싶었다(?). 별 수 있나, 내가 먹고 싶은 거 내가 해야지! 돼지 앞다리살은 가성비가 훌륭하다. 뒷다리는 안 된다. 앞다리가 좀 더 기름지고 야들야들하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앞다리살 제육볶음. 1킬로 가까이 사서 잔뜩 볶기로 했다. 팬에 파기름 마늘기름을 내고 간장도 태우듯이 바글바글 끓여 불향을 입혀준다. 거기에 갖은양념으로 재어둔 고기를 뒤적뒤적 열심히 볶아준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토치질. 능숙하게 부탄가스에 토치를 고정해 ‘치이이익’ 불질을 해준다.(물론 토치가 필수는 아니다. ‘토치질 꼭 해야 하나요?ㅠㅠ’라고 물으신다면 아니요!라고 할 거다. 레시피 글도 아닌데 너무 쓸데없는 얘기인가?) 커다란 접시에 초록 데코를 위해 상추 몇 장 깔아주니 보기도 좋다. 900그램 없어지는 거 쉽네 쉬워. 이날도 아이들은 말했다.
“엄마, 최요비 나가야 되는 거 아니야?”
마흔이 코앞이다. 최요비 서브작가도 최요비 출연자도 되지 못했다. 무엇이 되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유명 셰프의 요리는 아니더라도 우리집 전담 요리 정도는 할 수 있고, 심금을 울리는 대작은 못 쓰더라도 마흔 즈음의 감정을 글로 쓸 수 있다. 연재 브런치북 <음식 하나에 사랑과>의 작가로 사는 삶, 나쁘지 않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쌍따봉을 치켜들며 엄마 꼭 최요비 나가라고 말해주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 나는 항상 스스로에 만족을 못하지만 사실 이 정도면 정말로 충분한 삶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