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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an 19. 2018

어린 멍뭉이의 야성


얼마 전 등산로가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주황색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와 그의 동행인 개 한 마리를 봤다. 그 개는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긴 줄에 묶여 아주머니한테 잡혀 있었다. 전형적인 토종룩을 한 그 개는 등산로를 발랄하게 뛰어다니며 아주머니의 앞뒤옆을 오갔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한다. 멀리 달아나면 줄이 팽팽해져 그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다시 돌아오고, 그 개는 아주머니의 줄이 늘어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자유를 허락받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이 허락한 영역까지만 체험하며 살았을 그 개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한다면 어떨까. 그 개는 자신의 유전자에 각인된 야성을 다시금 자각하고 인간의 돌봄(이라고 쓰고 지배라고 읽는다)이 닿지 않는 곳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까.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시선을 돌려 나 자신을 생각했다. 내게 이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날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내게 익숙한 영역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까. 인간을 고만고만하게 길들이는 동시에 안정감을 주는 주류 사회를 벗어나 내 존재 고유의 야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반려견의 운명


예전에 친구가 키우던 콩알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 친구가 많이 아꼈던 강아지였는데 어느 날 지인의 집에 맡겼다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워낙 방정맞게 뛰어다니는 녀석이라 조심조심 모시고 다녀야 하는데, 그 집 아버지가 묶지 않고 데리고 나갔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거침없이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체온을 나눠왔고 그만큼 깊이 정이 들었을 친구의 상실감은 컸을 것이다. 나는 물론 그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엉뚱하게, 처음으로 자신을 잡아당기는 줄 없이 자유의 공기를 호흡한 한 어린 강아지의 야성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그 아이는 자신의 목을 잡아당기는 답답한 줄 없이 외부 세계를 만나는 짜릿한 자유를 처음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목을 부르르 털면서, 집 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4, 3, 2, 1...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내려서고 그의 눈 앞에 무제한의 자유가 슬며시 열리는 문 틈으로 파고들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손을 벗어날 결심을 굳혔을 것이다. 동행한 인간의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낚아챌까 두려워, 그는 자신의 몸만이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열렸을 때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자유를 향해 내달아버렸다.


반려견의 운명을 지고 태어나 출생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을 그 강아지는 어떻게 그렇게 거침없이 자유를 찾아 질주할 수 있었을까. 철이 없어서? 아니 아마 불안을 학습하지 못해서겠지. 인간은 너무 똑똑해서 모든 위험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그 해답으로 불안을 축적한다. 그리고 그만큼 움츠러들고 멈칫하게 된다.



크로마뇽인의 아이폰


내가 본 야성을 잃지 않은 인간들은 아름다웠다. 자신만의 색깔로 빛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자극했고, 들끓는 에너지로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의 온도를 높였다. 그래서 거듭 야성에 대해 생각한다. 죄의식, 윤리, 타인의 시선, 불안 - 우리의 야성을 거세하는 이 모든 사슬을 끊고 내 존재의 원형을 회복하고 싶다. 출생 때부터 집 안에서 길들여진 그 생명조차도 마음속에 곱게 간직해온 야성. 그런 거, 다시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구석기 크로마뇽인한테 아이폰을 던져주며 써보라고 하면 그는 아마 이빨로 두어 번 깨물어본 뒤 곱게 갈아 볏짚을 자르는데 쓸 것이다. 우리가 크로마뇽인 정도의 야성을 회복하는 일 역시 그가 아이폰을 자유자재로 쓰는 일만큼이나 아득하겠지만.


얼핏 가장 최근에 경험한 야성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했던 순간.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분출하는 그 열정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맞서 그는 저항할 것이다. 믿음, 용기, 부당한 권위에 대한 저항.. 뭐 이런 멋진, 살아있는 인간의 생생한 야성은 그렇게 조금씩 기억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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