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01
위베르 드 지방시 (1927 ~ 2018)
지방시는 잘 생긴, 귀족 출신의 프랑스 남자였다. 미적 탐구심을 갖고, 아름다운 여성 의복을 만들었다. 자신의 브랜드를 LVMH에 매각하고, 시골마을에서 여생을 살다가 죽었다. 거장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았을까?
1952년 위베르 드 지방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명품 패션 브랜드 지방시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루이 14세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고, 집안은 세습 귀족 출신이다. 어머니는 프랑스에서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1,2위 공장을 소유했던 집안의 딸이었다.
프랑스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막내아들이었고, 192cm의 훤칠한 키에 미남이었다. 태피스트리의 영향으로 그는 직물과 의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방시는 프랑스의 유력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52년 지방시 브랜드를 만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3년 영화 ‘사브리나’ 촬영장에서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을 만났다. 그때부터 햅번은 지방시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영화에 출연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그녀는 지방시의 멋진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는 지방시의 첫 향수 브랜드의 전속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녀 덕분에 지방시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과 왕족의 의상들을 제작하며,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다.
햅번과 이런 인연으로 인해, 그녀가 죽기 직전에 미국에서 스위스로 이주할 때 도와주었던 사람도 바로 지방시였다. 그녀가 암 말기라서 스위스까지의 여행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진단에, 자신의 전용기에 의료장비까지 구비해서 그녀의 마지막 비행을 지원했다. 지방시와 햅번의 스토리 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나올 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서 라이선스 계약으로 정장을 만들다가, 이후 신세계인터내셔널로 변경되었다. 최근 지방시가 한국에 직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 백화점 몇 군데에서 내가 입던 지방시의 양복매장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지방시 매장을 보면, 왠지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는 40여 년간 지방시를 이끌다가 프랑스 LVMH에 매각하고, 1995년 은퇴했다. 이제 지방시는 LVMH 소속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는 말년에 파리 인근 시골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다가, 잠을 자던 중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지방시의 디자이너가 프랑스의 귀족이었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배우 햅번과의 사업적인 파트너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최근 우리나라 패션시장은 명품과 SPA로 극명히 나뉘어 있다. 지방시도 명품시장에서 꾸준한 실적을 보였으면 한다. 나의 추억이 담긴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