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예술가 01
이어령 (1934 ~ 2022)
이어령은 무엇을 몰랐는지 잘 모르겠다. 그의 심연 같은 지적세계에서 불꽃같이 뿜어져 나왔던, 글과 말에 놀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세상에 그때까지 없던 언어를 구사했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이어령은 인문학자이자, 88 올림픽 개폐회식을 연출했던 인물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장관직을 떠나는 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드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인이다.
아버지가 사업에서 자주 실패해 집에 재고상품을 잔뜩 보관했는데, 어린 시절 이어령은 이것들을 가지고 놀면서 지적 호기심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의 문학적인 감수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국문과 2학년 때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라는 글로, 당시 스타 작가들을 신랄하게 비평했다. 22세의 젊은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50년 동안 글을 쓰며, 2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가 서울대 입학식에서 했던 축사를 나는 인터넷으로 접했다. “대학에 합격한 순간 여러분은 떴습니다. 입시 공부의 오랜 굴레에서 벗어나, 공중에 떠있는 느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뜬다’는 말을 잘 씁니다… 세계 최상위권으로 뜬 우리 대학, 한강의 기적으로 떴고, IT와 한류로 떴든 ‘우리나라’ 올해로 60년 환갑을 맞는 대한민국도 이제 방향을 정해 날아야 합니다. 높이높이 날아야 합니다.”
워낙 깊은 사고와 인문학적 통찰을 가지고 빚어내는 그의 글은,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시절에 그는 박사학위가 없었는데, “누가 감히 그의 학위 논문에 토를 달수 있겠는가?”라는 이야기가 그때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딸이 있었다. 딸의 인생은 기구해 집에서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본의 아니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혼했다. 딸은 미국에서 변호사로 재기했지만, 이후 자녀들의 죽음과 병마 때문에 목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이어령의 딸은 2012년 세상을 등졌다. 이어령은 당시 무신론자였는데, 기독교에 귀의하고 딸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딸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어령도 10년 뒤 2022년 영면했다. 나는 그가 죽기 전 남긴 인터뷰 책과 말년의 사진들을 보면서, 거장의 퇴장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