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마크 저크버그

경영자 05

by 구포국수

마크 저크버그 (1984 ~ )

호기심이 많고, 남들보다 항상 앞서기를 원해 때로는 강하게 투쟁했다. 사명마저 바꾸었는데, 그 세상이 아직 그의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SNS에서 실물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 메타!




마크 저크버그는 올해 40살이다. 그의 부모님이 모두 의사인데, 그는 11살 때 병원에 환자 도착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그는 컴퓨터 능력을 이미 인정받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2002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이후 그는 사진과 프로필로 구성된 명부형태의 SNS를 만들었고, 2004년에 페이스북을 창업하게 된다.


저크버그가 친구의 기술을 빼돌렸다는 이야기, 당시 공동 창업자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그는 페이스북의 창업자로 자리매김했다. 페이스북이 한창 성장할 때 야후에서 10억불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만약 그가 고등학교 때 MS의 입사 제의를 수용했거나, 야후에게 사업을 매각했다면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현재까지의 결과로 본다면, 두 번의 거절은 성공적인 것 같다.


페이스북은 2012년 신의 한 수 같은 M&A를 했는데, 사진과 동영상으로 구성된 인스타그램을 10억불에 인수했다. 인수 후 인스타그램의 원래 CEO와 헤게모니 싸움으로 갈등을 겪다가, 기존 CEO는 회사를 떠났다.


저크버그는 가상현실과 VR기기(오큘러스) 사업도 전개했다. 아직까지 설익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메타버스 플랫폼사업에도 사운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2022년 사명마저 메타로 바꾸었다. 최근 메타버스 사업에서 큰 적자를 보이며, 페이스북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메타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가 팽팽하다.


아무튼 그는 창업 CEO로서 20년간 글로벌 SNS업계를 리딩하고 있다. 아직도 다양한 도전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독특한 외모와 작은 체구와는 달리,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후드 티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스티브 잡스에 비교될 만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 아이팟이라는 기존에 있던 MP3제품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페이스북의 사업모델도 우리나라에 이미 있던 싸이월드와 동일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싸이월드, MP3업체 아이리버를 이미 보유했지만 메타와 애플에 뒤쳐졌고, 결국에는 사라졌다.


금년 4월 저크버그가 내한했을 때, 그는 윤석렬 대통령과 30분가량 면담했다. 윤대통령은 저크버그에게 메타의 상상력을 구체화해 줄 수 있는 제조기반이 한국에 많고, 적극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삼성과 LG가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는 메타처럼 먼저 꿈꾸고, 상상하는 기업은 없는 것일까?


제품과 서비스, 사업을 바라보는 선구안과 기술혁신 역량이 왜 부족할까? 메타가 앞으로 헤쳐갈 길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뚝심 있게 상상하고 결단할 수 있는 CEO와 인재들이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기업경영은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저크버거가 2004년 최초 펀딩을 실리콘밸리의 피터 틸에게서 받았다.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페이팔을 공동으로 창업했던 실리콘밸리 투자 엔젤이다. 나는 옛날 신문에서 초기의 페이스북 사무실을 리모델링 해준 인테리어업체 사장이 한국계 이민자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시 그 사장은 페이스북 건물의 리모델링 대금을 현금이 아니라, 페이스북 주식을 달라고 해서 받았다고 한다. 20년 전에 피터 틸, 한국계 이민자 인테리어업체 사장은 남다른 선구안을 가졌던 것 같다.


개인정보 보호 이슈, 내부 고발자, 가짜 뉴스, SNS 중독 등 SNS 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이런 문제들은 메타뿐만 아니라 트위터(X), 유튜브, 구글도 마찬가지이다. 창업 20년의 메타가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변신해 나갈지, 저크버그를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더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 그의 상상력과 결단에 메타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림5.jpg




keyword
이전 13화내만사 - 위베르 드 지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