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03
프랭크 게리 (1929 ~ )
물고기 형상으로 미술관을 만들었다. 도시재생을 넘어, 미쉐린 별 3개의 미술관 건물을 건축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는 호주의 오페라하우스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빌바오시는 그에게 큰 빚을 진 것은 아닐까?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을 만든 건축가이며, 1989년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은 철강과 조선소로 유명했다.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를 지나며, 철강수요가 줄고 조선의 주력 생산기지가 일본과 한국으로 넘어갔다. 이때 빌바오시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1억불을 과감히 투자했다.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프랭크 게리와 함께, 이곳에 혁신적인 미술관을 만들었다.
빌바오시는 건축가 게리에게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같은 혁신적인 건축물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논외로 하더라도, 1997년 준공된 빌바오 미술관 자체만으로도 작품이다. 미술관 외곽 곡선 디자인과 물결무늬는, 게리가 헤엄치는 물고기를 스케치한 대로 만들어졌다.
티타늄 패널, 유리 커튼 월 등 20세기 아방가르드 최고 건축물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매년 1백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빌바오를 방문한다고 하니, 도시재생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 한 건축가의 혁신적인 건축물, 구게하임의 미술 컬렉션, 스페인 지방정부의 도시재생 의지라는 세 박자가 빌바오 미술관을 탄생시킨 것이다.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유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성장했다. 할아버지는 작은 철물점을 운영했고, 할머니는 손자 게리와 함께 나무와 철판 조각으로 작은 미래도시 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놀이경험이 그의 모형중심 설계방식, 금속과 합판의 소재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미국 LA로 이민을 와서, 그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도 만들었다. 철저하게 모형을 통해서 재료의 특성과 구조를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가 만들었던 모형들은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창의적인 구조물이었다. 2019년 그가 만든 루이뷔통 메종 서울이 압구정에 들어섰다.
나는 빌바오 도시재생을 보면서, 스웨덴 말뫼의 눈물이 떠올랐다. 말뫼의 대형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이 1불에 사서 가져갈 때,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 우리나라 조선업이 많이 어렵다. 한국에서도 말뫼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 빌바오처럼 변신해야 할지를 우리나라 조선업계, 거제시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