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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사 - 앙리 마티스

미술가 05

by 구포국수

앙리 마티스 (1869 ~ 1954)

야수파는 원색을 짐승처럼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미술 사조다. 짐승이란 표현이 무섭기도 하지만, 색의 마술사에게는 최고의 찬사다. 색종이를 오렸던 샤갈은, 회화와 조각을 한 작품에서 아울렀던 최초의 인물이다.




“색은 자기만의 존재 양식을 가지고 있다. 색은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진다. 나는 꼭 사물을 재연하는 색이 아니더라도, 색 자체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티스는 20세기 피카소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힌다.


두 사람 모두 세잔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마티스는 색채의 해방을 표현하며 야수파를 창시했다. 피카소는 형태의 해방을 주장하며, 큐비즘을 만들어 각자의 영역을 개척했다.


마티스는 프랑스 북부 카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곡물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마티스는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중 맹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쉬는 기간에, 어머니가 그에게 화구세트를 주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안정적인 변호사직을 버리고,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로 떠났다. 어린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중 스승 모로를 만나,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은 직물 염색공업이 발달한 곳이었는데, 강렬한 원색을 사용했던 것은 향수 때문인 듯하다.


야수파는 거칠고 화려한 색을 사용하는 것이, 야수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미술 사조다. 그는 이전 화가들이 원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원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십이지장암 수술 후 붓을 들 수 없을 때, 색종이 오리기 방식(컷 아웃)으로 그림을 그렸다. 원색의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방식이 색과 형태를 아우르는 표현방식이라고 했다. 잘린 색종이는 그에게 조각가의 조각 작품과도 같았다.


그의 작품에 식물 모스테라가 자주 등장한다. 생긴 모양도 그렇고, 종이 자르기를 하기에도 편안해 보이는 형태다. 나는 가족과 니스의 미술관에서, 그의 화려한 원색과 컷 아웃 색종이 작품을 많이 감상했다. 니스의 따뜻한 기후, 그의 감각적인 컬러와 단순한 형태가 잘 어우러진 듯했다.


최근 실내 디자인이 미니멀리즘 영향으로 마티스 풍이 유행이다. 실제 그의 손자가 유명한 실내 소품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은 마티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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