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의 변화시대
사무실 OA 인프라 - 마하의 변화시대
사무실 OA 인프라는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마하의 변화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실감될 정도로, 나는 변곡점의 시대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는 삼성은 컴퓨터도 PC 소프트웨어도 없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일본 NEC의 랜플랜(엑셀), 랜워드(MS워드)가 회사 OA의 표준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서는 PC가 1인 1대였지만, 전사적으로는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었다. 나는 회사 전체 경영실적 집계를 위해 랜플랜(엑셀 유형)을 사용했다. 현재 직장인들과 학생들은 엑셀의 파워풀한 기능을 경험하고 있겠지만, 30여 년 전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실적을 조직 단위별로 집계하다 보니, 랜플랜이 제공하는 100% 를 활용해도 항상 용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두 개의 데이터 파일을 연결, 요약하는 매크로 로직을 내가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복잡한 계산식이라도 들어가면 연산 스피드도 떨어졌고, 출력할 때는 정말 가관도 아니었다.
지금은 레이저 프린터에서 한 장씩 착착 나오지만, 당시는 탱크 사이즈 만한 도트 프린터를 사용했다. 시간절약을 위해 점심시간에 인쇄명령을 주고 나갔는데, 프린터가 잼에 걸렸던 경우도 허다했다. 엉켜 있는 종이 정리는 물론, 새로 출력하면서 내 인내심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랜플랜의 데이터가 최대 입력 가능했던 셀 영역은 ‘BL255’였다. 30년이 지났으면서도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에 그 용량에 대한 절박함을 누구보다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작업 후 저장을 하지 못해, 오랜 시간의 작업이 헛수고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꿈에서 이런 장면에 가위눌려, 깬 적도 부지기수였다(거의 직업병 수준). 이후 랜플랜에서 로터스로 바뀌었고, 그 뒤에는 윈도 체제에서 엑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신입사원 초기 3년 동안은 더하기와 빼기에만 주력했던 것 같다. 셰프가 되기 위해, 주방청소와 설거지를 먼저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스프레드 시트 작업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이후 보고서 작성이 메인 업무가 되면서 워드(아래한글, 훈민정음, MS워드), 그 뒤에는 파워포인트 같은 소프트웨어를 주로 사용했다. 부장 시절에는 사무보조 여사원이 타이핑은 대신해 주었다. 나는 연필로 보고서 초안 작성, 타이핑된 자료수정과 보완에 주력했다. 평생을 지원부서에 근무하다 보니, 문서작업은 나의 일상이었다.
내가 그룹에서 임원이 되어 물산에 복귀했을 때, 당시 CEO께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보고서 작성에 대한 강의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때 관련 자료를 만들고, 사내에서 ‘보고서 작성법’에 대해 몇 번 강의도 했다.
‘보고서는 나의 분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나는 보고서 작성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그리고, 이것을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단순히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보고서만이 능사가 아니라, 효율적인 보고가 중시되는 트렌드에 직면하고서 나 역시 조금씩 양보했다. 모든 일이 참 영원한 것은 없다고 느꼈다. 물론, 어떤 것이든 그것만의 장점은 있지만 말이다.
개인 PC의 소프트웨어가 DOS에서 윈도 환경으로 바뀐 것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란 개념도 태동되었다. 미국에서 AOL이 한참일 때(아마 1990년대 말) 국내에는 유니텔, 하이텔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이후 웹의 등장으로 인터넷 포털, 모바일, SNS 등 정보와 전자상거래, 소셜 네트워크의 장들이 열렸다. 이제는 빅데이터, 컴퓨터가 딥 러닝을 통해 스스로 지적으로 진화하는 AI까지 발전했다. Chat GPT는 이미 업무보조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30년간의 변화의 강도는, 인류의 등장부터 30년 전 바로 그때까지의 모든 변화의 폭과 깊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사무실 안에서 OA 인프라의 숨 가쁜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지난 30년의 사무 인프라가 이렇게 급변해 왔는데, 앞으로의 30년은 어떻게 변할까? AI와 포털이 전체 사무실의 아카이브를 새롭게 구축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것(AI와 그 체제)에 종속되어, 단순 입출력 노동자로 전락하지 않을지도 살짝 우려된다.
기술의 진보, 그리고 그것이 주는 신세계의 명암은 우리 모두가 분명히 인지하고, 헤쳐 나가야 할 것 같다. 피터 드러커가 언급했던 ‘지적 노동자’로서,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는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지적 노동자는 AI와 공존하고 리딩할 수 있는, 슈퍼 파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