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심
나이도 많고 기술도 없는 애가 퇴사를 한다니 다들 걱정반 호기심반으로 물어봐.
왜 퇴사해?/퇴사하고 뭐 할 거야?/남편이 돈을 잘 벌어?/앞으로 일 안 할 거야?
미련 없이 퇴사하는 내가 부럽기도 걱정되기도 한 모양이야.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워.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쌓여온 피로와 좌절,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억누르며 버티려 했던 삶의 무게 때문이거든.
나는 19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
치킨집, 호프집, 선술집, 족발집, 삼겹살집, 마트판매부터 공장 생산직원, 품질관리사원, 경리, 화장품 판매, 방문미술강사, 아동미술학원강사, 콜센터 상담원까지. 나름 다양하고 많은 일을 했어. 남들이 보면 정말 열심히 산다고 할 정도로 일하기를 쉬지 않았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더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대체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야.
한때는 화장품 판매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천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 고객들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며 미술에 대한 갈증을 충족했고 다양한 이벤트 기획을 통해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어. 30대에 접어들면서 찾아온 슬럼프는 나를 뒤흔들었고, 그때 한 차례 큰 일을 겪으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렸어. 더 이상 내가 하던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고, 점점 우울해져 갔어. 결국,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던 판매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다시 독립할 수밖에 없었어.
독립은 자유를 얻는 대신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다시 화장품 판매직으로 돌아갔지만, 그 일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어. 이전에 느꼈던 열정도, 능력도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나는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어.
그렇게 돌고 돌아 38살 겨울, 콜센터 상담사로 취직했어. 더 이상 내가 갈 곳도, 받아줄 곳도 없었기 때문에
그 회사가 내 인생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바랐어.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더라.
콜센터에서 나의 하루는 끊임없는 전화, 그 속에서 각양각색의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의 연속이었어.
하루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 건 기본이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감정적 소모가 나를 압박했어.
아침 9시부터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붓는 사람, 억지 부리는 사람, 다짜고짜 3행시를 지어주겠다며 운을 띄어보라는 사람, 성희롱적인 발언을 점잖게 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나는 매일 출근길이 지옥처럼 느껴졌어.
내 성향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일을 그저 '나이가 들어 취직하기 힘드니까 참아야 한다'며 억눌렀고, 그 사이 삶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져 갔어. 점심시간마다 창밖을 보며 '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 물론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자체가 이미 나의 정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였어.
나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어.
"오늘은 어떻게든 버틸지 몰라도, 앞으로 30년, 40년을 이렇게 버틸 수 있겠어?"
그 질문이 나를 깨운 거야.
"아니, 도저히 못 해!"
이 고통을 평생 견디며 살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 그리고 결심했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일단 나를 살리기 위해 그만두기로 한 거야.
이번에는 단순한 퇴사가 아니었어.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기는 퇴사가 아니라 남은 인생을 살게 해 줄 일을 찾기 위한 퇴사였지. 이번에는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지고 싶었거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위한 일을 찾고 싶었어. 그러던 중 우연히 숏폼 제작 강의를 알게 된 거야.
나는 콜센터에 근무하면서 스트레스를 독서로 풀었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어.
숏폼을 배우면 릴스도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신청했지.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너무 재밌고 적성에 맞더라고. 이왕 배우는 거 계속 배워보자 싶어 이후 영상 편집 초급, 중급, 그리고 추가 수업까지 연이어 신청했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 정말 재밌더라고. 이걸 배워서 돈을 벌어보면 좋겠다 하는 희망으로 열심히 수업에 임했어.
처음에는 편집자로 일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차츰 내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는 유튜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어. 물론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나는 재미도, 유행도 잘 모르는 사람이거든. 이런 내가 트렌드에 예민한 콘텐츠 세상에 발을 담그겠다고? 한심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전은 나에게 유일한 선택처럼 느껴졌어. 이 일 말고는 더 이상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무조건 매달려야 했어.
이미 나는 퇴사했고, 휴식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나에게 퇴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심이었어.